김미희 <소설가>

마스크를 하고 혼자서 뒷산을 오른다. 날씨는 맑고 차갑다. 숲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긴다. 마스크를 하고 산책하는 사람만 몇 명 있을 뿐, 신종 코로나 여파로 산은 고요하다. 연초에 나는 매일 만보 이상 걷는 일을 목표로 세웠다. 하루에 만보씩 걸으려고 만보기도 준비했지만 생각보다 싶지가 않다. 항상 핑계는 많다.
조선시대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를 보면 서울에서 열하까지 걸어서 갔는데, 무려 69일이나 걸렸다. 지금은 비행기로 4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박지원 일행은 하루에 강을 9번이나 건너기도 하고, 양 쪽에서 노비가 손을 잡아 주고 자면서도 갔다. 그렇게 어렵게 중국의 연경에 도착하니 황제는 피서지인 열하에 가고 없었는데, 조선의 사신단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급보를 받고 이번엔 열하까지 목숨을 걸고 무박 4일 만에 간다.
 더위에 지치고 잠이 모자라가면서 조선 사신단은 오로지 걸어서 업무를 수행했다. 걸어서 가는 길은 장애도 많고 속도도 느렸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맞춰 가려고 노심초사 걸음을 빨리 했다. 그런 가운데 박지원은 주변의 풍물도 보고 수많은 사람들과 사귀면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했다. 지금은 열하까지 2박 3일이면 관광이 완료된다. 두 달의 시간을 3일로 줄여 주는데도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몇 년 전부터 친구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아름다운 제주의 산과 들, 바닷길을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한 번에 올레길 전체를 다 걷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몇 번에 걸쳐 거의 10년 만에 다 걸어서 다녔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올레길과 달리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달 이상이나 걸어야 하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출발 계획이 없으니 어쩌면 버킷리스트로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그 한 달을 빼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속도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속도를 늦추고 일부러 그 먼 길을 걷는다. 박지원도 사신단에 끼어 연경에 간 것도 견문을 넓히기 위한 여행으로 걸어 간 것이었고, 연경에서 열하까지도 오로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한 선택이었다.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열하까지 걸어서 가는 길을 개발했으면 그 길을 한 번 걸어 가보고 싶다. 박지원처럼 필담을 나누고, 요동벌판의  통곡하기 좋은 장소에서 울어 보고 싶다.
조선시대에는 수두나, 홍역 등 전염병이 돌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 때는 병원이 부족하고 전염병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현대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전파되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의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백키로 이상을  다니고, 수 백 명이 모이는 행사에도 노출 된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 된 이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간다. 이렇게 빨리 전파된 것은 속도 때문이다. 서울에서 대구, 대구에서 부산 가는 거리가 너무나 빠르다. 신천지 교인들은 기차나 승용차로 아침에 서울의 집을 떠나 낮에 대구에서 예배를 보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가속력이 붙어 있으니 바이러스 전파도 순식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바쁜 시대에 느린 것은 죄악이고 민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느린 것이 너무 필요하다.
정부의 빠른 대응책도 신약 개발도 전염병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으니 우리의 고민이 깊어진다. 조선시대처럼 예배모임도 여행도 걸어서 갔다면 이렇게 전파력에 속도가 붙지 않았을 것이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주는 경고가 아닐까? 속도야 멈춰라 하고 천천히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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