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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안산신문
  • 승인 2020.04.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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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

결혼 후 이름 대신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로 불리다가 중년이 되니 언니, 동생, 이모로 불린다. 이름 아닌 호칭이 자신이 된 삶은 과연 나의 것인가, 아님 남을 위한 것인가? 책임과 의무로 살아온 삶 속 자신이 짠하다. 가끔은 집안일을 미루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예전 좋아하던 일들을 하며 자신이 꿈꾸던 삶 속으로 가보는 것도 좋겠다.
  책 표지의 노을빛이 가득한 방안 그녀의 뒷모습에선 평온, 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고독도 보인다. 혼자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삶이 궁금해진다. 주변 사람들의 눈엔 큰집과 넉넉한 생활비, 파출부까지 부럽기만 한 가정이다. 주인공 수전이 결혼과 동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남편과 육아에 전념하는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그녀도 지성적 부부라면 당연한 삶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더는 자신의 손길이 필요치 않는 순간, 남편이 외도를 당당히 고백하기 이전까지는. 버려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을 더 이상 집과 가족에게 맡기지 않기로 한 그녀는 자신을 찾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한다. 낡고 허름한 호텔 19호실에서 그녀는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 행복한 자유를 느끼며 마음을 회복한다. 그러다 다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면 혼란스럽다.
  “이건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한 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290쪽)
  답답함을 느끼다 어느 순간 인정하기도 했다가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 때면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그녀. 그 시대의 결혼은 여성에게 당연함과 익숙함이라는 말로 행동범위를 제한했다. 지성, 이성, 교양적이지 못한 감정들을 가질 수도 있으나 견디고 절제하며 여성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위로 할, 자신을 위한 시간과 장소가 절실히 필요했다. 가정에 마련한 자신의 쉴 곳은 가족들이 침범한다. 가족도 없고 그녀를 아는 사람도 없는 장소. 그렇게 그녀는 호텔 19호실을 찾는다.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수전이 위험할 정도로 공허할 때가 늘어났을 뿐. … 부정이라든지 용서 같은 극적인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지성이 그런 단어들을 금지했다. 지성은 싸움도, 삐치기도, 분노도, 속으로 침잠한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라 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287쪽)
  이 글은 부부의 지성적 결혼생활이 끝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육아와 가사, 지친 결혼생활의 고단함을 느끼는 여성에게 다들 그렇게 산다며 오랫동안 다 그래 왔으니 참으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다. 그녀는 남편을 용서해야 했다.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시간과 위태로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19호실에서만 가능했다. 그 동안 아이들은 보모에, 남편은 다른 외도녀에게 길들여지는 것을 느낀다. 가족에게 자신은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 도리스레싱이 1960년대에 쓴 작품으로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19호실로 가다>는 가정에 국한 되어 ‘가정 속 천사‘로 강요된 여성의 사회 모습을 그렸다. 작가는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여성도 개성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답답한 사회에서 주인공의 삶에 대리만족을 느끼던 많은 여성독자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물개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싶다.
  무거운 주제의 소설임에도 그 초월적인 힘은 지금 시대의 여성에게도 많은 공감을 준다. 가정 속 아내와 엄마의 역할이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자신에게 집중하여 평소 해보지 못한, 해보고 싶었던 일들로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으며 조금 다른 삶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김향수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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