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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이 띄우는 초대장
  • 안산신문
  • 승인 2020.04.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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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 <동화작가>

요즈음 들어 비가 잦다. 비 오는 모습을 보며 무심코 ‘봄비’라고 읊조리다 움찔 놀라고 만다. 코로나19 여파로 계절 감각마저 잃어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지구 온난화로 점점 짧아지는 봄인데….
초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지은 ‘봄비’란 글로 칭찬받은 적이 있었다. 그 칭찬이 얼마나 좋았으면 어린 마음에 봄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봄비가 내리면 산과 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겨우내 가슴 깊이 품었던 초록빛 물감을 풀어놓기 위해 얼마나 가슴 설레며 좋아할까? 흙 속의 씨앗들은 눈을 뜨기 위해 얼마나 옹알거리며 꼼지락댈까? 키 작은 풀들은 뒤꿈치 들며 얼마나 고개를 빼 올리려 할까?’
봄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은 어영부영 사라지고 말았지만, 지난시절의 자화상에 쓴웃음이 절로 나오고 만다. 참 조용히도 봄비가 내린다. 그러나 봄비는 그냥 내리질 않는다. 제 할 일 다 하며 고맙게 내린다. 가만 바라보면 낚시질하는 모습으로도 봄비가 내린다. 월척들이 땅 속에서, 나무에서 걸려나온다. 그것도 까르르 웃는 아이의 모습으로 걸려나온다. 새싹과 새순 그리고 꽃들, 정말 아름다운 월척들이다. 이제 파스텔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변해갈 산과 들의 파노라마 같은 모습에 행복함마저 느낀다. 이 비가 그치면 산과 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집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노적봉이 손짓을 하고 있다. 노적봉은 안산시민에게 참 고마운 선물이다. 행복을 주는 아름다운 쉼터이다.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아야 하는 계절, 그래서 봄은 ‘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는 그럴싸한 이야길 떠올리며 노적봉으로 향한다.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개나리터널엔 개나리꽃이 한창이다. 한참을 바라보면 개나리꽃에서 병아리들이 삐악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어깨에 쏟아지는 병아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노적봉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절로 가볍다. 노적봉에 들어서면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가 노란 얼굴로 맞는다. 산자락에는 진달래꽃이 지천이다. 볕 바른 곳의 제비꽃과 봄까치꽃의 앙증맞은 모습에 눈이 즐겁다. 마음까지 즐거워진다. 어디 이뿐이랴, 아직도 지난해의 마른 잎을 달고 있는 갈참나무의 서걱대는 소리는 겨울의 노적봉 모습을 반추하게도 만든다. 솔가리들이 쌓인 익숙하지 않은 산길을 걷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봄이 있기에 겨울을 이길 수 있는 법, 노적봉은 삶의 예지까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나무 위에서는 까치와 직박구리 그리고 딱새들의 지저귐이 예사롭지 않다. 겨울보다 한결 힘이 들어가 있는 지저귐에서 봄의 숨결이 느껴진다. 까치가 물고 가는 나뭇가지를 보면, 새봄을 맞아 보금자리를 리모델링하는 것 같아 가슴이 더 따스해진다. 나무를 바삐 오르내리는 청설모와 이젠 제 영역을 서로 넓혀가는 토끼들이 사람들과 눈맞춤을 하고 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운동기구 몇 개와 친구하다 보면 만병통치약을 먹은 기분이다.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고질병들이 다 떨어져나가는 느낌마저 든다. 노적봉의 봄이 주는 마음의 선물이리라.
이제 조금 있으면 벚나무들이 노적봉의 주연 노릇을 할 것이다. 벌써 성급한 벚나무는 꽃망울을 환하게 터뜨리고 있다. 노적봉은 벚나무의 꽃망울 터지는 소리로 제대로 쉴 틈이 없을 것이다. 팝콘 터지는 소리일까, 대포 터지는 소리일까, 아니면 아기들 웃음소리일까? 절로 웃음이 나오는 행복한 산책길이다. 노적봉 정상에 서면 가슴이 확 트인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전철의 오가는 모습, 사통팔달로 내달리는 차들의 모습이 그림엽서처럼 보인다. 정상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현실, 이럴수록 가슴마다 봄의 느낌표와 줄임표가 켜켜이 쌓였으면 좋겠다. 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 봄을 만질 수 있는 손, 봄을 이야기하고 사랑의 시를 읊조리는 입…. 노적봉을 걷는 사람들마다 봄비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향하는 길 누군가가 발길을 잡아끈다. 노적봉이다. 노적봉에서 본 아름다운 모습들이 초대장으로 가슴에 들어온다. 힘들고 지칠 무렵 노적봉으로 와 달라는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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