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이트>

 때때로 사람들은 잘못된 결정을 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로 숨기는 게 더 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숨긴다. 여기 잘못된 결정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세상이 있다.
  뿌옇게 흐려진 하늘 아래 차갑게 내리는 비. 검은 우산을 쓴 채 표정 없이 움츠리고 걷는 사람들로 가득 찬 회색 도시. 절규하지 않는 ‘뭉크의 절규’라고 하면 어울릴까. 모두 앙다문 입인데도 그들의 절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 속에서 아이처럼 작은 브릭은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도서관은 중세시대 수도원처럼 이름 모를 책들이 빼곡하게 차 있지만 책도 사람들처럼 모두 회색빛이다. 무엇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가끔 위험한 책들도 꽂혀 있었다.
  “어느 날, 브릭은 어둑한 지하서고 꼭대기 칸에서 ‘읽지 마시오.’라고 표시된 책 몇 권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에는 브릭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있었어요. 모양도 색깔도 더없이 아름다운 그것을 ‘꽃’이라 부른다고 되어 있었죠. 브릭은 슬퍼졌습니다. 자기가 사는 도시에는 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게 바로 책을 숨겨 둔 이유인 것 같았어요.”
  세상의 모든 꽃이 다 시들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결정했을 것이다. 쉬운 거짓말을 하기로. 꽃이 사라진 슬픔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아예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만들었다. 꽃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은 슬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쁜 일도 점점 사라져갔다. 곧 사람들은 기계처럼 감정이 없어졌고, 세상은 직선으로만 가득 찬 무채색 도시가 되어갔다.
  ‘위험한 책’에서 꽃을 알게 된 후 브릭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자라나게 되었다. 꽃을 찾아다니게 한 호기심, 씨앗을 심고 생긴 기대, 싹이 트지 않자 느낀 실망, 꽃이 피었을 때의 기쁨, 청소기가 꽃을 빨아들인 후의 슬픔. 꽃은 브릭을 펑펑 울게도 했지만, 다시 찾을 용기도 주었다. 
  도시의 경계에서 붉은 꽃과 연둣빛 잎사귀들이 만들어낸 곡선과 색채를 보면서 브릭은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꽃이 없던 도시에서는 누구도 웃지 않고, 누구도 울지 않았다. 그러나 꽃이 있는 세상에서 브릭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더 소중한 것이다. 밋밋한 회색의 세상보다는 검은빛이 있더라도 여러 색깔이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처럼.
  “도시를 꽃으로 가득 채우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야기 작가 존 라이트는 이야기를 여기서 끝낸다. 그림 작가 리사 에반스도 꽃으로 가득 찬 도시를 그리지 않았다. 두 작가는 우리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브릭의 꽃은 또다시 시들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씨앗은 어떻게 자랄지 모르니까 재미있는 것이다. 시인 오은은 꿀맛이 달콤한 이유가 과거의 꾼 맛도, 현재의 꾸는 맛도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꿀맛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뻔하면 펀(fun)하지 않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씨앗을 심는 즐거움,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을 준다. 브릭에게 꽃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이 책이 ‘위험한’ 이유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세상’과 ‘웃기도 울기도 하는 세상’ 중에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고르기 어렵다면 <위험한 책>을 펴자. 때로는 아이처럼 단순한 생각이 옳은 결정이 될 때가 있다. 슬프면 펑펑 우는 것. 웃고 싶으니까 꽃을 찾아다니는 것.

김현숙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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