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조재면 지음, 해냄>

여기 탐나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가 있다. 흔한 대화가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를 놓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논술 대화다. 할아버지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유명한 조정래 작가고 이 책은 고등학생인 손자와의 논술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할아버지 조정래는 무심코 신문을 넘기다 같은 문제를 다룬 두 신문사의 사설을 봤다. 두 개의 사설 아래에는 제3자가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른 시각과 논리로 전개한 두 사설을 비교, 분석, 평가하는 글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멋진 공부라고 생각한 조정래 작가는 스크랩해서 모아두었다가 손자에게 선물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손자를 더욱 보기 힘들던 차에 어느 날 손자가 써보자고 한다. 그때부터 손자가 논술을 써서 보내면 할아버지가 손자의 논술을 교정해주고 그 주제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논술을 써서 손자에게 다시 보내게 되었다.
  손자인 조재면 군이 처음에 쓴 글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 입장에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논술이란 틀에 글을 넣은 느낌이 들면서 글을 읽는데 딱딱한 느낌이 있는 반면, 조정래 작가의 ‘역사는 꾸며지는 연극이 아니다’ 글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차근차근, 한발 한발 밟아오면서 쓴 글이라 혀에 찰찰 감기면서 잘 읽어진다. 그런 조정래 작가도 처음 손자의 글을 받아 읽으면서 매우 흡족해하면서도 손자보다 더 길게 쓰고 손자의 예상을 넘어선 새롭게 쓰기를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 책은 손자의 글이 있고, 할아버지의 글, 할아버지가 교정한 손자의 원고 순서로 정리되어 있다. 고등학생이지만 높은 지식과 판단력에 놀라면서 글을 읽게 되고, 할아버지의 글을 읽으면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은 쓴 물과 단물이 젖은 경험을 느끼게 된다. 손자의 글과 할아버지의 글이 서로 어울려서 또 다른 문화를 만들고 있다. 다만, 할아버지가 교정한 손자의 원고를 보면서 조금 거북스러움이 있다. 굳이 이렇게 교정본을 실어야 했을까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고쳐준 것이 아니라 점점 나아지는 글쓰기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손자는 다섯 개의 주제로 논술을 썼다. 그 주제는 지금 청소년이 고민하는 문제이고 현재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로 잘 선택했다. 첫 번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두고 손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과연 객관적으로 아버지를 평가할 수 없음을 말하면서 국정 교과서로 인한 사고의 획일화를 우려한다. 할아버지는 ‘역사’란 커다란 방주에서 바라보면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중요함을 말한다. 두 번째 장, 가습기 살균제(옥시) 사태를 손자는 기업의 윤리를 주장하고 할아버지는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지금 현실을 우려하는 글을 썼다. 세 번째 장에서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에 대해서 청소년 입장에서 기성세대를 비난하는 글을 썼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법을 논술했다. 네 번째 장에서는 사회적, 가정적으로 남녀가 평등해야 함을 논술한 손자와 남녀의 성 역할이 변화하는 사회와 함께 바뀌고 있음을 말하면서 조정래는 남녀평등은 인간의 발견이라면서 논술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장에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역병인 비만을 두고 손자는 비만 문제를 통해 바라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논술했고, 할아버지는 새로운 인류의 유행병인 비만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논술했다.
  손자의 논술에서 아쉬운 점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는 너무 논술이란 틀을 의식하고 썼고, 가습기 살균제를 보면서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논술하는 것은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많은 사설을 보고 인용하는 느낌이 컸다. 하지만, ‘셧다운제’를 바라보는 손자의 눈은 매우 날카롭고 예리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게 된다. 그리고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성을 넘어서 평등한 인간으로’ 논술을 읽으면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밝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 책을 논술을 위한 책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논술 책으로 한정 짓기에는 아까운 면이 많다. 국가와 사회의 중대사를 놓고 솔직하고 담백하고 예리하게 파고드는 이런 대화를 모든 세대가 함께 하면 좋겠다. 논술 학원으로 자녀들을 보내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60~80년 동안 세상을 바라본 할아버지(주위의 어르신)와 함께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깊은 대화를 해보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자료를 찾고, 사설을 읽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써보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논술을 잘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 외에 답이 없다고 한다. 학원에서 족집게로 뽑아주는 논술로 대학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응급처치일 뿐이고 머리에 남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약삭빠른 요령과 술수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책이다. 우선 아이와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손자와 할아버지의 논술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른 생각들을 말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글을 써보면 더욱 좋겠다. 

최소은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