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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가 또 사람 잡은 세상
  • 안산신문
  • 승인 2020.05.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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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동화작가>

계절의 여왕 5월이 시작되었다. 들길마다 예서제서 피어나는 꽃들로 난리북새통을 이룬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난리북새통 꽃길이다. 들길마다 사람들의 감탄사와 스마트폰의 셔터 터지는 소리가 쉬질 않는다. 5월은 기념일이 다른 어느 달보다 많은 달이다. ‘근로자의 날’로부터 문을 여는 계절의 여왕 5월, 그러나 5월이 시작되기도 전에 설마가 또 고귀한 생명을, 그들의 삶을 인정사정없이 앗아간 끔찍한 대형 화재가 터졌다.  
4월 29일, 이천시 모가면에 있는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을 화마가 삽시간에 휩쓸었다. 참혹한 현장, 두말할 것도 없는 또 인재이다. 화마는 38명의 고귀한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물류창고 지하 2층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순식간에 4층 건물로 번졌다고 한다. 유독가스가 빠른 속도로 건물에 들어차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공간과 계단 등이 화마의 통로 구실을 했다. 걷잡을 수 없는 죽음의 연기가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퍼져 대형 화재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4월 21일, 군포물류창고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220억 원의 피해를 낸 이 화재는 담뱃불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대형 화재의 무서움을 경고하는 화재였다. 4월 24일에는 안동 산불로 축구장 1100여 개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그 피해액이 무려 33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터진 이번 대형 참사는 그 후유증이 오래갈 전망이다. 우리를 더 어어 없게 만든 것은 12년 전인 2008년 1월, 40명의 근로자가 사망한 이천 냉동 창고 참사와 판박이라는 데 있다. 그 참사 이후로 여러 가지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있으나마나한 휴지 조각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건설현장에서 대형화재가 터지면 단골손님처럼 스티로폼과 우레탄이 유령처럼 나타난다. 아직도 건설현장에서는 화재에 취약하고 불이 붙으면 유독물질을 내뿜는 스티로폼이나 우레탄이 단열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자재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작업 중에는 유증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조심조심, 안전수칙을 꼭 지켜야 됨에도 불구하고 설마 하는 안일한 사고방식 때문에 또 터진 것이었다. 
생명은 지위와 빈부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다. 긴박한 순간에도 함께 일하던 동료부터 챙기고 소화기를 찾다가 유명을 달리한 근로자. 물류창고 공사를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산골에 들어가 단란한 노후를 꿈꾸었던 근로자, 동생과 매제와 함께 일하다 변을 당한 근로자. 부자가 함께 일하던 중 아버지는 숨지고 아들은 위독한 상황이다.
왜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어 일어나는지 ‘빨리빨리와 설마라는 의식, 그리고 느슨한 법 집행’ 이런 것들이 뒤섞여 이번 참사가 터진 것이다. 12년 전 이천 냉동 창고 화재로 기소된 피고인 7명 중 실형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벌금과 집행유예가 대부분이었다. 일반인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 없는 거짓말 같은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번 참사로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되묻게 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다. 특히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던 현 정부에서 과거 정권과 판박이 참사가 벌어졌음에 더욱 화가 치솟는다. 사망자와 부상자들, 모두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이다. 손잡고 미래로 나아갈 소중한 사람들이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생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일치단결, 재난과 안전사고 방지책 수립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벌백계의 강한 법을 이번에는 만들어야 한다.
오래전 한겨울 새벽녘, 안산역 부근 인력파견업체를 들른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보았던 새벽 그믐달과 싸늘한 별빛,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발 동동 굴러가며 추위를 참는 근로자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돌아서는 일용직근로자들의 어깨 쳐진 뒷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설마 하는 안이한 생각 때문에 사람 잡는 세상, 다시는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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