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소설가>

저녁 어스름이 질 즈음의 고향에는 아직까지도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날리고, 지푸라기 타는 냄새와 거름 썩는 냄새. 고소한 감자와 옥수수가 익어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도회감각에 베어버린 식욕을 동하게 한다.
  고향엘 가면 들녘에서 일을 하시던 부모님과 다른 동네 분들도 친자식이 온 것 마냥 한결같이 반가이 맞아 주신다. 그 중에서도 읍내에 사시는 가짜 큰아버지는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선걸음에 달려오신다. 가짜 큰아버지는 아버지와 호형호제하시던 아버지의 친구분이다. 가짜 큰아버지는 우리 큰아버지와 이름이 같아서 우리 형제가 붙인 별명이다.
  해방 후 중학교를 다닐 때 사상적 혼란기에 아버지는 학생 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이름은 경찰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라 하루는 학교로 경찰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찾자 교실은 소란해지고, 어수선한 틈을 타서 아버지는 피신하셨다. 대신 아버지와 이름의 획이 하나 다른 친구 분이 경찰에 연행되어 갔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집안어른들이 백방으로 손을 써서 친구 분도 아버지도 무사 할 수 있었다. 두 분은 항상 함께하며 감옥도 대신 가 줄 수 있는 우정으로 호형호재 하고 지내셨다.
  아버지는 6.25 전쟁이 나자 학도병으로 참여하셨고, 친구 분도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뒤따라 학도병에 지원하셨다고 한다. 부대는 달랐지만, 두 분도 죽음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학교에 복귀 하셨다. 아버지는 장교학교를 거쳐 국군장교로 근무하셨다.
 항상 외지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와 달리 읍내의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친구 분은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가신 진짜 큰아버지 이상으로 우리들에게 잘 챙겨 주셨다. 당신도 우리들에게 큰아버지로 불리는 것을 기뻐하셨다. 나는 학교에서 오다가 우체국에 들려서 아저씨가 사주는 빵과 우유를 먹고, 또 새로운 우표가 나오면 먼저 구해주셨다. 친구들은 나의 새 우표 때문에큰아버지가 있는 나를 무척 부러워하곤 했다. 그 때 모은 우표책은 지금도 고나의 보물 1호이다.. 
 결혼 후 생활 근거지를 대구에서 수도권으로 옮기고 친정에는 갈 기회도 적어지고 혹 가더라도 시간이 없어 아저씨를 뵐 기회가 없었다. 가짜 큰아버지의 소식은 가끔 어머니로부터 '정년 퇴직하셨다.' '당뇨가 있단다.’ 며 전해 주셨다. 찾아뵈야겠다 생각하면서 마음뿐이었다.
  4년 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는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얼마 후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짜 큰아버지가 오시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어머니께 여쭐까 하다가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가짜 큰아버지는 우리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일주일전에 우리 집에 다녀가시다가 돌아가셨어."
"우리는 장례식에 모두 다녀왔는데, 언니는 멀리 있다고 엄마가 연락 안 했나봐.“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한꺼번에 다 잃은 서러움에 한참을 눈물 흘려야 했다. 감옥까지 대신 가는 우정을 넘어 두 분은 마지막 가는 길마저 그렇게 허망하게 일주일 간격으로 같이 가셨는가. 두 분이 계시는 하늘나라에서는 가짜 형과 아우가 아닌 진짜 형과 아우가 되어 호형호제하며 살아가실까.
 이젠 고향에 가도 그 두 분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아직도 나는 가짜 큰아버지의 산소도 한번 찾아보지 못한 채, 이제 어머니도 안 계신 고향에서 더욱 멀어져 가고 있다.
  내게도 감옥까지 대신 가줄 친구 한 명이라도 있는가? 그보다는 얼마나 남에게 베풀고 살았나 되돌아보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각박한 세상에 남을 위해 헌신 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형제이상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향기로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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