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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여행이야기<71>고택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어떨까?
  • 안산신문
  • 승인 2020.05.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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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朝勤雨洗巖崖(삼조근우세암애) 사흘 동안 비가 내려 바위와 벼랑을 씻더니만,
遙望淸凉氣像佳(요망청량기상가) 멀리서 청량산 바라보니 기상이 아름답구나.’  - 춘당공 이양의 시, 후손인 이익의 ‘유청량산기(遊淸凉山記)’에 실린 것으로 농암종택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
  

농암종택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위치하며,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대문채로 구성된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정자로 된 단독 별채가 구성되어 있다. (경북 안동)


   고택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어떨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지방의 큰집, 할머니 네 집 또는 외갓집을 자주 다녀 본 사람들에겐 옛집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 집이 크든 작든 도시가 아닌 곳에서의 생활은 특별하다. 같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다른 동네는 완전한 다른 신세계였을 테니까. 오래된 주택, 즉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어쩌면 여행자가 예전에 겪었든 아니면 자신도 모르고 가슴 속에 숨겨져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게 된다. 4대강 살리기 위해 강 길 걷기를 하던 우원식 의원을 따라 안동지역 낙동강 변을 걸을 때 한 고택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안동호 수몰 지역에 있던 주택을 인근 강변을 따라 나 있는 퇴계 이황이 걷던 옛길 - ‘예던길’ 또는 ‘퇴계 녀던길’이 있는 한 곳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산과 물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경관이 너무 좋아 나중에 가족과 함께 꼭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었다. 그때는 일행이 많아 제대로 고택에 대해 느끼기보다는 강 지키기에 관한 이야기에 몰두하였을 때라. 고택 자체에 대해서는 울림이 적었었다. 오히려 좀 불편하더라도 경관을 보러 와야겠다는 정도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인 2011년 초겨울에 다시 찾았다. 그곳이 바로 안동호 상류 청량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농암 이현보의 종택, 농암종택(聾巖宗宅)이었다.
    두 번째 찾았을 때는 가족들과 함께였고, 필자만 제외하고는 고택에서 머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들 입대 전에 하는 가족 여행이 아니라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여행이었고, 또 의견을 각자에게 물었다면 고택에 가는 것을 싫어했을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안동 시내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출발하여 약 50분 거리에 있는 종택에 도착하니 한밤중인 저녁 9시경이었다. 당시에는 가로등이 주변에 없어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라고 해야 했다. 차에서 내리니 산속 공기가 으스스하였다. 종가를 지키던 장손이 차 소리를 듣고 나와 주었다. 아래채에 안내를 해주었는데 아이들은 포근함에 일차로 만족하였었다. 공기는 선선하였으나 바닥은 엄청 뜨거워서였다. 두꺼운 솜이불 네 채를 까니 방이 가득 찼다. 특히 이불과 요의 두께에 대해 놀라워하였다. 네 식구가 한 방에 자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집과는 다른 환경에서도 잠자리가 편했다는 점에 대해서 신기해했다. 지울 수 없는 오래된 집의 냄새조차 장애가 전혀 되지 않았다.
   고택은 지은 지 오래된 옛집을 말한다. 여행에서 민박하는 고택들은 대부분 조선 시대 양반가의 집을 의미한다. 경주 양동마을이나 고성 왕곡마을 등에는 일반 서민들의 집이나 초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옛날 벼슬아치가 살았던 기와집을 기대한다. 따라서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고 정자까지 있는 예도 있다. 현판(懸板)은 물론이고 대들보나 문설주 그리고 충보와 창방에 이르기까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글이나 시구가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주인으로부터 문화 예술에 대한 안내까지 받아야 이해할 수 있다. 현판은 성문이나 궁궐의 문, 그 밖의 건축물의 문이나 대청 위 또는 처마 밑에 글씨를 판에 새겨서 걸어 놓는 것을 말한다. 주택이면 흔히 당호(堂號)라 하는데 거처의 이름이 된다. 대개 ‘-당’으로 끝나지만, ‘거처’를 뜻하는 한자어 ‘-재(齋)’나 ‘-헌(軒)’으로 쓰기도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한옥 살림집은 북방에서 발전한 구들을 드린 온돌방과 남방에서 비롯된 대청마루가 한 건물 내에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특징이라 하였다. 따라서 고택은 과거의 주거형태나 생활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다.
   이름난 고택은 종택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고택은 종손이 이어받아 온다. 농암종택은 농암의 17대 종손이 집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머물면 아침을 대청마루에서 뷔페식으로 제공한다. 음식은 종갓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요리법으로 집주인이 먹던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 반찬과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어 옛 식생활도 체험할 수 있다. 필자가 숙박을 한 날도 같았다. 그러니 자연 다른 투숙객들도 만나게 되고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맡고 수려한 경관을 보면서 어울려 식사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을 고택 여행이 가지고 있다. 농암 집안은 대대로 장수 집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농암종택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약사에 보면 ‘장수 비법에 대한 종손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러면서 제철 음식으로 차린 담백한 밥상을 보여줬다. 진귀하고 기름진 재료는 아예 없었다. 600여 년을 이어온 농암 종가의 밥상을 현재 책임지고 있는 이는 종부다. “음식에 콩가루를 많이 써요. 간은 집간장으로 하고. 우리 집 간장은 안 끓인 생간장이죠. 김치는 1년에 한 번, 김장 때만 담가요. 가을배추는 농약을 안 쳐도 되고, 달고 맛있거든요. 요즘은 딱 장아찌 담글 때네요….” 종부는 약보(藥補)보다 한 수 위라는 식보(食補) 비결을 공개했다.’ 그러니 식보를 맛볼 수도 있다.

마루야마 마을에서 숙소로 쓰이는 고택. 이 마을 1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농촌 마을로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에도 전통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일본 사사야마)

필자는 일본의 한 고택에서도 3일을 머문 적이 있었다. 7년 전의 일이다. 효고현 사사야마 시의 마루야마 마을의 160년이 넘은 두 고택에서 민박하였다. 전통 건축과 실내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였지만, 화장실과 침실만 개조해 놓은 집이었다. 일주일에 버스가 한 번뿐인 오지 산골 마을이지만 고급 식당이 두 곳이나 있어 이곳에서 일본 전통 아침 식사를 집을 관리하는 주민이 매일 아침 배달해 주었다. 기억이 맞는다면 마을에는 12가구에 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고, 몇 집은 비어 있으니 아마 15호 정도가 되는 시골 동네였다. 일본 생태관광협회의 안내로 생태관광지를 방문한 것이었는데 옛 일본 마을에서 머물다 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날 마을의 모든 집에 요리를 하나씩 해와 작은 잔치를 열어 석별의 정을 나눈 저녁이었다. 물론 한국 요리도 포함되었다. 안내자가 우리 일행에게 요리 두 가지를 할 준비를 해오라고 해서 불고기와 잡채 재료를 준비하였었다. 떠나는 날 아침에는 모두 눈물을 글썽였고, 협회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우리 일행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최근에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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