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네하시 코츠>

책을 읽다보면 그 속에서 또 다른 책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시 제목을 잊어버릴까봐 메모해두기는 했는데, 어떤 책이 나와 이 책을 이어 주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점점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횟수가 잦아진다.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다. 이 책 《세상과 나 사이》는 그렇게 또 다른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흑인으로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연히 아주 오래된 책인 줄 알았는데, 코츠의 나이를 보니 1975년생으로 우리와 함께 현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내가 만난 한국어판은 2016년 9월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우리와 함께 20~21세기를 살아가면서 보고 들었던 뼈아픈 일들의 산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열두 살 꼬마 타미르 라이스를 살해하는 장면을 너는 보았다. 똑같은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누군가의 할머니였을 말린 피녹에게 도로변에서 뭇매를 때리는 장면도 너는 보았지. 그리고 설사 예전에는 몰랐다 해도, 네 나라의 경찰에게는 네 몸을 파괴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는 걸 이제 너는 똑똑히 알게 되었어.”(19쪽)
  2014년 7월 에릭 가너가 개비 담배를 팔았다는 이유로 목이 졸려 죽었고, 2013년 11월 열아홉의 레니샤 맥브라이드가 도움을 청했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고, 존 크로퍼드가 어느 백화점 안을 둘러보았다는 이유로 총에 쓰러졌다는 걸, 이제 열다섯 살 아들도 잘 알기 때문에 서른아홉의 아빠는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아들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 글을 썼다.
  겉으로는 노예해방을 통해 흑인들에게도 자유와 평등권을 제공하고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국가’라고 자칭하면서 20세기에도 인종차별은 계속 되었고, 현실에도 레드라이닝(흑인 빈민 지구)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미국의 전혀 달라지지 않는 또 다른 면을 고발하며 아들조차도 자신이 지킬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에 코츠는 분노하고 절망했다.
  그는 미국에서 흑인의 몸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느껴왔던 두려움을 이야기하면서, 그 두려움을 만들고 조장해 온 미국의 역사를 들려주며 이렇게 아들에게 언급한다.
  “나는 너를 두려움 속에서, 또는 가짜 기억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네가 억지로 기쁨을 감추고 네 눈을 가려 버리는 건  원하지 않았어. 내가 원했던 건 의식이  깨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거였다. 그래서 너에게 어떤 것도 감추지 않기로 결심했지.”(171쪽)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흑인 소년의 아버지이며, 그냥 배우자가 아니라 흑인 여자의 남편, 검은 사랑이라는 화물기호였음을 통탄하면서, 선조들을 기억하고 지혜와 메카의 온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름을 위해 투쟁하라고 아들에게 충고한다.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은 계속되어 왔고, 코츠의 말처럼 흑인 차별은 결국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고, 권력을 손에 쥔 백인들이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계층적 문제라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
  우리 또한 현실을 살아가다보면 흑인문제뿐만 아니라, 아직도 우리사회에 알게 모르게 소수라는 이유로 다름이 틀림으로 규정지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2015~2016년 미국 사회에서도 인종 문제를 향해 도발적인 주장을 던지며 커다란 논쟁을 불러왔으며, 2017년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빌려 본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감히 희망을 이야기 하지 못하는 이 책《세상과 나 사이》가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고 절망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성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과 ‘세상과 나’ 가 결코 무관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꼭 한 번 접해보았으면 좋겠다.

민복숙(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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