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해파랑길 완주 목표로 3년 전부터 걷고 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이다. 전체 10구간 50개 코스, 770㎞의 거리이지만 길이 편해 혼자 걷기에도 충분하다. 이제 울산 구간 일부만 걸으면 끝이 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해파랑길은 각 구간마다 바닷길, 숲길, 마을길 등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더욱이 해파랑길만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구간의 유명한 유적지까지 찾아볼 수 있어 금상첨화 격이다.
많은 구간 중에서 포항 구간이 기억에 남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일제 침탈 흔적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구룡포항과 복원된 일본인 거리도 인상 깊지만 옷깃을 절로 여미게 하는 곳이 따로 있다. 바로 포항 북구 용흥동에 위치한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이다.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고 이우근(당시 16세,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학도병의 주머니에서 나온 편지를 오목새김한 편지비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어머니에게 쓴 편지이다. 첫 구절부터 코끝이 찡해지며 다 읽지도 못해 학도병들의 피 끓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에 빠져 버린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다. 그 편지의 가장 가슴 아픈 일부분이다.
…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도 형제들도 다시 한 번 못 만난다고 죽을 생각을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그 때의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눈시울을 얼마나 적셨는지 모른다.
6월이 시작되었다. 6월은 의병의 날, 현충일, 6·10 민주항쟁, 6·25 한국전쟁, 제2연평해전이 있는 달이다. 그야말로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귀한 호국영령들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보답해야 하는 과거와 현재를 잇게 하는 소중한 달이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호국영령들과 그 유족들에게 미안한 감을 느낀다. 최근에 보훈처가 보여준 보훈정책에 실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훈정책이야말로 정치와 이념과는 무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보훈정책은 민심까지 분열시켜 실망이 크다. 가장 큰 것이 공론화 단계도 거치지 않고 국가유공자 선정 기준을 슬며시 완화해 버린 것이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데 역시나였다. 손혜원 의원의 부친인 고 손용우의 유공자 선정 특혜 의혹과 고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그들의 입맛에 따라 보훈정책도 바뀌어야 하는가? 절대 아니다. 지난 해 3월, 임시국회에서 정무위원회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손 의원의 의혹과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의 답변 태도, 보훈처의 자료 미제출 등으로 국민의 분노를 샀다. 
보훈정책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보훈정책에 대한 불신은 국론분열을 일으키게 하는 무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분들에게 국가는 최상의 예우를 갖추는 것은 물론 그 유가족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6월, 여느 달보다 우리들에게 옷깃을 여미게 하고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중한 달이다.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나아갈 방향이 그리 녹록치가 않은 게 현실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띄우지 못한 학도병의 편지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배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라의 소중함, 위정자들의 마음가짐, 국민 개개인의 정신무장을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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