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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경제학
  • 안산신문
  • 승인 2020.07.0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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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안산제일복지재단 수석이사>

어떤 일의 경지에 이른 솜씨를 가진 사람을 달인(達人)이라고 한다. 요즘은 볼 수 없는데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을 유난히 좋아했다. 최근에는 미스터 트롯에서 14인에 올랐던 트롯가수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노래도 잘하지만 그들의 오랜 무명생활속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자기자신을 훈련하고 역량을 길러온 과정들은 결코 공짜로 얻어진 영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이정동교수는 2015년 26명의 산업기술전문가들과 공저로 축적의 시간을 펴낸후 2017년 도전적 시행착오를 축적하는 5가지 전략과 4개의 열쇠를 제안하는 축적의 길을 썼다. 중간소득의 함정을 모범적으로 벗어나서 성장하던 한국의 산업기술과 경제는 성장엔진이 멈추고 식어가고 있는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개념설계와 경험의 축적 역량임을 제시했다.
  칸트의 ‘직관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는 명제는 유명하다. 인간은 두 가지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실질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하는 대상을 담는 틀을 시간과 공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과 장소는 역사로 남겨지고 경험되지 않고 인식하는 미래는 불확실성의 미스터리가 된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고 정의하는 개념(concept)을 통해 지성이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틀을 범주라고 한다.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는 사유는 내용이 없어서 공허하고 지성의 능동적 활동에 따른 개념없는 경험은 구조와 형식으로서 정리되지 않기에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학습하는 존재이다. 태어나면서 선택과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축적된 자아상태인 내면의 성격과 가치관, 신념을 만든다. 물론 시행착오라는 실패의 경험과 자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작은 성공 경험들이 반복되어 삶이 축적되고 비로서 철이 들고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니라 연속임을 알게 된다.
  수년전까지 기업에서 지식경영이 유행했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경쟁환경에서 기업이 고유의 관리기술 또는 제조기술, 상품기술을 가져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경영은 그렇게 대단한 이론이 아니다. 기업에서 장기근속한 직원들이 몸으로 익혀 축적된 암묵적인 기술을 드러나게 해서 기업의 전략자산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장기근속자의 퇴직으로 인해 기술(knowhow)이 경쟁회사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사내에 확보해 두기위한 전략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기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나중에는 현장에서 오감으로 익혀진 경험적인 노하우(knowhow)와 엔지니어의 이론적인 지식이 일체를 이루어 기업의 고유기술인 전략자산으로 확대된 것이다. 인간의 지식(기술)에는 두가지가 있다. 우선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체험적으로 습득되어 보이지 않지만 작업자의 두뇌와 몸에 배여있는 지식이 있고, 다른 하나는 형식지(explict knowledge)는 것인데 암묵지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표준화되어 매뉴얼이나 문서로 드러나 형상화된 지식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지식과 기술은 경험의 축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기술 특히 세계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와 전자산업은 하루아침에 확보된 기술이 아니다. 1970년대의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말 그대로 모방정도가 아니라 그냥 복사(copy)수준이었다. 제품의 추상적인 개념을 설정하고 설계하는 기술이 전혀 없었다. 일본의 전자제품들을 해체하여 회로를 복사하고 분리된 부품들을 구입하여 그대로 조립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수십년간의 반복된 경험의 축적은 일본을 따돌리고 시장을 선점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엣지 컴퓨팅, 블록체인 등 기술 트렌드가 급속하게 바뀌면서 후발주자였던 중국 등이 급부상하고 있고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돈만 있으면 기술을 살 수 있고 금방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기술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기술로 결코 전략적 자산이 아니다. 스스로 상품의 추상적 개념을 정의하고 설계하므로 누구도 모방할 수도, 대체할 수도 없는 희귀성의 가치를 가진 기술은 경험의 축적으로 가능하다. 맛집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인의 고뇌와 반복적인 경험과 고객의 입맛에 맞추려는 절대적인 노력이 축적되어 만들어내는 예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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