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지음>

  올해 휴가철만큼 조용하게 보낸 때가 또 있었을까? 예년 같았다면 ‘산으로 아니면 바다로 갈까, 펜션은 어디로 잡을까? 호텔에 묵는 게 나을까?’ 등등 놀러갈 궁리로 가득했을 이 시기를 염려와 걱정 그리고 두려움으로 꽉 채웠다. 시간은 엄격하고 무정해서 인간들이 어떤 난리 지경에 있든지 말든지 상관치 않고 부지런히 달려간다. 처서가 지나고 가을이 턱 끝에 왔다. 이미 휴가철은 다 지났고 어디 늦은 여행도 다녀오기 어려운 이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 눈에 띈다.
  김영하 작가는 어린 시절 전학을 자주 다녔다. 한 곳에 적응할만하면 다른 도시로 옮겨가 거기서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 했던 그의 기억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는 돈이 없던 시절에는 적금을 부어서라도 여행을 다니곤 했을 정도로 여행광이다. [여행의 이유]에는 글쓰기 다음으로 작가 김영하를 사로잡은 여행에 대하여 그가 털어놓는 기억, 느낌, 생각을  모았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109쪽
  파리에 가지 않은 사람도 파리의 풍경은 안다.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 지구촌 어디 심지어 우주 공간까지 가볼 수 있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가지 않은 곳의 풍경 뿐 아니라 냄새, 소리까지도 더욱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여행의 이유]는 그 이유를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설명한다. 여행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일상에서 탈출하여 오직 현재만을 느끼게 한다. 여행은 안전하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의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변화무쌍한 여정 속에서의 나를 마주하는 과정이며 이 예측 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중심을 잡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여행에서 내가 얻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김영하 작가는 여행에 대한 독자의 기억을 일깨워 그때 얻었던 것들을 나열하며 ‘왜 우리는 여행을 떠나려 하는지’의 물음에 답한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205~206쪽
  삶은 종종 여행에 비유된다. 모든 사람은 지구라는 여행지를 거쳐 가는 여행자들이다. 여행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낯선 장소에서 난처한 일을 겪거나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할 때도 있고 인심 좋은 현지인 덕에 곤경에서 벗어나거나 행운을 만날 때도 있듯이. 여행도 삶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예측 불가능하다. 김영하 저자는 그런 예측 불가능한, 무질서한 현실에 부딪혀 마음이 흔들릴 때에 다시금 중심을 잡고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 우리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심리적 틀을 소설과 여행에서 발견했다. 이 책의 끝에 ‘인생이 곧 여행’ 이라며 소설과 여행지 속으로 떠났던 여행의 기억들이 지금의 자신을 빚었음을 이야기한다.
  언제쯤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겠냐며 하소연하는 지인들이 있다. 아마 당분간은 마음 놓고 국내 여행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그런 우리에게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여정을 펼쳐주는 책이 있어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나 자신을 달랜다. 여행지로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분들에게 언젠가 정말로 낯선 여행지 속에 풍덩 뛰어들 그 날을 기다리며 [여행의 이유]로 마음을 달래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아가 [여행의 이유]가 알려주는 여행과 삶과 소설의 닮은꼴에 고개를 끄덕이셨다면 도서관에, 책방에 무궁무진한 여행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소설이라도 얼른 펼쳐보시기를 함께 권한다. 

정상미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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