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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버텨야 합니다.
  • 안산신문
  • 승인 2020.08.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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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꿈의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물론 전국이 아직 거리두기 2단계의 공포에 휩싸이기 전에 한 지인 가정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여전히 장례식장에 가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안 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경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갑자기 잃은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가서 위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빈소에 가니 사진 속에서 망자가 웃고 있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그동안 웃지 못했던 것을 풀려는 것인지, 망자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 사진을 보면서, 남은 이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웃음과 무표정 뒤에 감쳐진 눈물을 몰랐던 것을 후회하고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많은 말을 하기보다 그냥 함께 있어 주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빈소에 있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흔히 삶을 포기한 경우를 가리켜 ‘버티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포기한 것은 버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통해서 버티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뒤늦게 알 뿐 것입니다.
  또 하나는 버티되 잘 버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버티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극단적으로 벗어나는 방법도 있고, 때로는 견디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어느 것이라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택할 것은 무엇일까요? 모두를 아프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7월 말, 미국의 조지아주에서 있는 한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홉스’라는 보안관이 교도소를 살피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집니다. 넘어지는 과정에서, 머리를 크게 부딪히며 피를 흘립니다. 죄수들은 갇혀있었고, 동료는 없고, 주변에 도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 수감자가 홉스를 보고 소리를 지르더니 문을 쾅쾅 두드립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모든 수감자가 하나둘씩 홉스를 위해 큰 소리를 냅니다. 모두가 홉스를 위해 한마음으로 외치고 두들기는 소리에, 홉스가 순간 의식을 되찾고 제어 해제 버튼을 누른 뒤 또 쓰러집니다. 그 순간 감옥 문을 열고 나온 세 명의 수감자가 나와서 구조를 요청합니다. 그 덕분에 홉스는 서둘러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수감자가 볼 때, 홉스는 불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홉스를 살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알고 보니 홉스는 수감자 하나하나를 따뜻하게 대우했다고 합니다. 냉랭하게 대해도, 때때로 욕해도, 먼저 따뜻하게 다가가서 대했답니다. 그 따뜻함이 수감자들의 마음을 열었고, 결정적일 때 그를 살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힘들면 나의 상황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힘든 것을 생각하고, 내가 어려운 것을 생각합니다. 힘들 때 오히려 이웃을 돌아보고, 따뜻한 손을 내밀라고 하면, ‘그럴 정신이 어디 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번 마음먹고 그렇게 버텨보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그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것이 나를 살려줄 것입니다. 모두 잘 버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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