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소설가>

 2020년 초부터 TV는 트로트가 지배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방구석에서 TV나 보고 있던 대중들은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는 트로트에 빠져버렸다. 트로트의 멜로디와 가사가 사람들의 가슴 저변에 있는 감성을 건드렸나 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 빠져있다. 무엇이 저들의 마음을 뺏아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까?
 좋아하는 가수도 다양하다. ‘미스터 트롯’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진·선·미에 뽑힌 임영웅, 영탁, 이찬원 등 좋아하는 가수앓이에 빠진 지인들은 그들이 나오는 트로트 프로그램에 열중하고 있다. 처음 ‘미스터 트롯’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알게 된 계기는 영탁이라는 가수 때문이다. 지인이 커피까지 사주며 문자투표를 하라고 권유해서였다. 처음 ‘미스터 트롯’을 시청했으나 지인처럼 확 마음에 드는 가수는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스터 트롯’에서 진·선·미에 뽑힌 임영웅, 영탁, 이찬원 외에 4위를 한 김호중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주변에 넘쳐났다. 허리가 아파서 다음날 출근을 못할 것 같았는데, 밤에 TV에서 임영웅이 나와서 나았다는 사람. 영탁이 광고하는 막걸리를 마시고 피자를 사먹으라는 사람. 콘서트가 취소되어서 실의에 빠진 사람. 4위를 한 김호중의 노래를 끊임없이 톡으로 보낸 주는가 하면 『트바로티 김호중』 책까지 나왔다고 그 책을 읽기를 권하기도 한다. 무엇이 이토록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쏟아내게 할까.
 영화 <님은 먼 곳에>서 주인공 수애는 월남전에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님은 먼 곳에’를 구성지게 부른다. 수애는 무명가수가 되어 월남에 위문공연을 가서 우여곡절 끝에 남편을 만난다. 이렇듯 대중가요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녹여주는 역할을 한다. 대중가요 특히 트로트는 애달픈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며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아서일 것이다. 또한 어린 가수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도 공감대를 형성했으리라.
 70년~80년대에 나는 라디오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듣고 팝송이나 가요를 따라 불렀다. 그 때는 비오는 날이나 수업이 지루하면 선생님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거나 노래 잘하는 친구가 불려나가서 대중가요를 부르곤 했다. 우리는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나타난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의 수상 노래를 부르고 ‘산울림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내 짝은 노래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하루는 내가 큰소리로 추천을 해서 짝꿍이 나가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가서 “홍도야, 울지마라”를 간드러지고 애절하게 불렀다. 무언가 가슴이 녹아내리는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트로트를 옛날 노래라고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중학생이 청승맞게 트로트를 부르다니.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지인들처럼 열광은 않지만, 임영웅의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핑도는 나이가 되었다. 그 때 트로트를 잘 부르던 친구를 수소문했다. 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고는 연락이 끊겼다. 동창회 톡방에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그 가족의 연락처와 사진까지 보내주었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트로트 오디션을 준비하던 중에 백혈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다. 친구의 아들이 엄마의 노래를 녹음해 두고 가끔씩 듣는다며 음원을 톡으로 보내주었다.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짜 트로트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한을 느꼈다.
트로트야 내 친구를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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