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9월 3일 새벽 3시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아무도 몰래 칼스바트를 빠져나왔다. 그것도 그의 서른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하려고 모인 친구들을 버려둔 채로였다. 당시 괴테는 독일 지역의 소국 바아마르 공국의 재상을 역임하고 있었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발표하여 문학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알프스를 넘은 괴테는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와 베네치아를 여행하고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에서 자신의 제2의 탄생이라고 했을 정도로 감격스러운 세계의 수도와의 문화적인 만남으로 3개월 정도를 보낸다. 그 후 다시 나폴리를 거쳐 시칠리아를 4개월 동안 여행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로마에서는 화가 수업을 하는 등 로마의 문화에 젖어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수업하다가 10개월 후에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1년 8개월에 걸친 이 이탈리아 여행기를 정리 보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한 것은 1829년 그의 나이 80세 때이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지금 로마를 비롯한 베네치아, 나폴리 등 이탈리아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거장 괴테가 이탈리아를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대의 교양 있는 여행자들의 시각 그리고 견해와 괴테의 안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데에서 이 책의 독자는 까닭모를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책에서는 괴테가 살펴보고 있는 이탈리아의 유적과 예술품들에 대한 견문보다는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의 괴테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괴테는 로마에서는 그 곳에 체류하고 있던 독일인 화가 티슈바인의 안내를 받았고 나폴리와 시칠리아 지역에서는 역시 화가 크니프의 안내와 조력을 받았다. 현재의 우리가 보는 괴테의 초상은 이 두 화가가 그린 당시 괴테의 초상화이다. 또한 괴테는 이들에게서 원근법을 비롯한 화가수업을 받는 일에 대단히 열중하기도 한다.
  괴테는 여행기간 내내 화가수업과 함께 자신의 예술작품을 보는 눈을 향상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그림에는 미칠 정도로 심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유적들을 찾아다녔고, 현지에서 관련 서적을 구입하여 공부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괴테는 이 1년 8개월의 여행에서 깊고도 폭넓은 고전에 대한 안목을 얻은 것 같다. 사실상 괴테의 이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독일의 고전주의가 싹 텄다고도 한다.
  책에 나오는 괴테의 행적으로 보아 그는 대단히 열정적이고 건강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 지방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위험하고도 험한 일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고성(古城)을 스케치하다가 간첩(염탐꾼)으로 오인 받고 모욕을 당하는 등 난처한 입장에 처했지만 발군의 기지로 모면하기도 했고, 마차를 먼저 보내고 도보여행을 하는 도중 부패한 지방경찰들에게 금전을 뜯기기도 한다. 나폴리에서는 항구의 짐꾼에게 여행가방을 날치기 당한 적도 있고, 로마에서 유력한 상류인사의 집에 식객으로 초대받아 갔을 때에는 주방장에게 식재료로 자신이 숲에서 채취한 버섯을 건넸다가 주인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열정적이고도 의욕 넘치는 철학자이자 과학자, 문학가인 괴테는 끄떡도 없이 이 일들을 유머를 곁들여가며 소개하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기간동안 괴테와 관련된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제일 먼저 그가 본국에 두고 떠나온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이다. 그녀와는 괴테가 일언반구의 양해도 없이 밤중에 이탈리아로 떠나버린 것이 계기가 되어 소원해졌다고도 한다. 그러나 괴테는 이 여행기 내내 중요한 부분에서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여행기를 적어나가고 있다. 다른 자료들에서는 그녀와는 연인 사이였다고도 한다. 또 한 사람은 고고학자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라이펜 슈타인의 아내 앙겔리카이다. 그녀는 유명한 화가였는데 괴테의 그림, 문화수업의 교사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또한 괴테가 사랑한 밀라노 아가씨를 마차에 태우고 사육제에 나타나 괴테를 위로해 주기도 하였다. 그녀는 괴테의 후원자로서 자상하고 사려 깊은 귀부인으로 등장하면서 많은 시간과 장소에서 괴테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이나 앙겔리카는 모두 귀족가의 귀부인이고 괴테는 미혼의 유망한 청년이었던 셈인데 당시 유럽문화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밀라노 아가씨라고만 소개되는 여인인데 괴테가 로마를 떠나는 마차를 세워둔 체 그녀의 창문 아래에서 가진 해후이자 이별의 장면은 묘한 여운을 주는 감동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1829년에 3부로 엮어져 발간되었다. 물론 괴테의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탈리아 유적과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요즘의 우리에게도 이탈리아 여행의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은 괴테의 자기 삶을 확장해 나가고 인생을 배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년 8개월에 걸친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 자신의 인간적 성숙뿐만 아니라, 괴테의 바이마르 공국이 독일 문화의 중심이 되었던 만큼 독일문학의 문학사적인 변천과정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낙엽이 지고 있는 이탈리아 고대유적지에서 옛사람의 흔적을 찾고 있었던 괴테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 가을에도 고전의 향기를 전해주는 멋진 이야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거장의 열정에 동화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장범<안산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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