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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찾아서
  • 안산신문
  • 승인 2020.11.2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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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연초에 시작된  팬데믹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도 코로나19의 발생에 휘둘려 불안하게 하고 있다. 모두들 한 해를 도둑맞은 것 같다고 한다. 계획한 모든 일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한 해의 대부분을 재택 근무한 나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다시 찾은 삶」에는 삶의 진실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는 각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 다시 찾아야 하는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고마울 따름이다.

 오 헨리의 「다시 찾은 삶」에서 금고털이 전문가 지미 밸런타인은 출소하자마자 금고털이를 하여 거액을 가지고 사라진다. 벤 프라이스 일급 형사는 도난 현장을 보고 한눈에 지미 밸런타인의 솜씨임을 알아챘다. 벤 프라이스는 밸런타인과 한판 승부를 벼뤘다.
 지미 밸런타인은 벤 프라이스를 피해 아칸소 주의 시골, 앨모어라는 조그만 읍에 은신했다. 근사한 옷차림의 밸런타인은 ‘랠프 스펜서’라는 이름의 신사로 행세하며 이 지역에서 구두 가게를 차렸는데, 사업은 크게 성공했고, 마을 사람들에게 명성도 얻었다. 급기야 이 지역 은행가 애덤스의 딸 애너벨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성공한 도둑 지미 밸런타인, 아니 랠프 스펜서는 금고털이와 완전히 작별했다. 자신의 힘으로 번돈이 아니라면 100만 달러를 준다해도 남의 돈에 손을 댈 생각은 없었다. 벤 프라이스 형사도 엘모어에 몰래 들어와서 지미밸런타인을 관찰하고 있었다.
 결혼을 며칠 안 남긴 어느 날 밸런타인은 리틀록에 가서 결혼식에 입을 양복을 맞추고 애너벨에게 줄 선물을 살 계획이었다. 또 하나는 리틀록에서 자신의 연장 가방을 옛 친구에게 물려주는 일이었다. 밸런타인은 지금껏 머물던 앨모어의 플랜터스 호텔에서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앨모어의 은행 앞에는 밸런타인을 태우고 갈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앨모어의 은행에서 새로 들인 최신식 금고 안에 아이 한 명이 갇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최신식 금고는 아직 컴비네이션을 맞춰놓지 않은 상태였고, 이 문을 열 수 있는 기술자는 리틀록에 가야만 찾을 수 있었다. 아이의 생명이 위험했다. 은행 앞문에는 밸런타인를 체포하러 온 벤 프라이스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랠프 스펜서는 다시 지미 밸런타인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밸런타인은 더 이상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예전의 전문 금고털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웃옷을 벗어던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가방에서 연장을 꺼내 늘어놓고는 언제나 그랬듯이 휘파람을 신나게 불며 전설적인 솜씨로 금고 문을 열어젖혔다. 아이는 무사히 엄마품에 안겼다.
 전문가로서 한껏 솜씨를 발휘한 밸런타인은 은행 문을 나서며, 길을 막고 선 벤 프라이스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듯 아리송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라이스 씨, 안녕하십니까? 자, 가시죠. 이제 어차피 아무려면 어떻겠소?” 그런데 벤 프라이스 형사는 좀 이상하게 반응했다. “스펜서 씨,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군요. 난 선생을 모릅니다. 선생이 탈 마차가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소?” 이윽고 벤 프라이스 형사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거리를 따라 내려갔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을 도둑맞았다고 호들갑만 떨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찾을 때가 아닌가. 욕심을 버리고 옳은 일을 구할 때, 그리하여 웃옷을 벗어던지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밸런타인이 스펜서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찾을 수 있었던 삶을, 우리는 잊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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