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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찬양
  • 안산신문
  • 승인 2020.12.0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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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지금까지 우리는 게으름을 죄악시했다. 부지런한 사람을 칭찬하고 성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잘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 여겼다. 공부벌레, 일벌레가 일평생 일만 하다가 퇴직 후 남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가장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물론 ‘일하기를 싫어하고 활동이 부족한 상태’라는 의미의 소극적 게으름은 문제가 되겠지만,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게으름이 꼭 필요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학자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적극적 게으름을 역설했다. 물론 러셀은 70여 권의 책을 출판했고, 2000여편의 글을 저술했다. 또 하루에 3,000자 정도의 글을 매일 쓰면서 단어를 중복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노력가였다. 그토록 바삐 살던 러셀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다소 어리둥절한 제목의 글을 쓴 것일까? 그는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을 증오하는 사람들과 평생토록 맞선 사람이면서 말과 행동의 합리적인 조화 이외에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현대사회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며 게으름을 죄악했다. 특히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적으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시간은 돈이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노동 시간을 늘어나고, 보다 근면한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보면 부자들이 수천 년 동안 주장해온 노동의 존엄성은 그들의 이기적인 소망일 뿐 노동자들에게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뭐요?’하고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할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나는 육체노동을 즐긴다. 그것은 내가 인간의 가장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또 인간이 이 지구를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면 즐겁기 때문이다. 내 몸이 주기적인 휴식을 필요로 하는 건 사실이므로 최선을 다해 채워넣어야겠지만, 아침이 오고 내게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 노고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자본주의가 부추긴 과다 경쟁과 일 중독에 우리는 무심코 편승하여 그것이 정답인양 믿었다.  여가를 줄여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생존을 보장해준다는 것도 탐욕스러운 그들만의 신화다. 노동자들은 여가를 누릴 때, 즉 적극적으로 게을러질 수 있을 때, 자신의 인간적 고귀함을 느낄 수 있고 정신적·육체적으로 다음 노동에 임할 수 있는 주기적 휴식을 가질 수 있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하여 게으름이 ‘적극적 게으름’을 넘어 ‘창의적 게으름’으로 발전할 때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된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삶에서 게으름이나 느림을 찬양하고 ‘워라밸’이나 ‘소확행’ 같은 신조어를 부르며 그기에 맞춰 살아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워라밸은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말하며, 직장을 구할 때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는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말이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하는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연말연시를 앞두고 마음은 조급하고 해야할 일은 많은데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딱 가로막고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 기회에 몸과 마음에 게으름을 입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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