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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안산신문
  • 승인 2021.01.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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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학고재>

1636년 12월 국호를 청으로 고친 후금의 홍타이지(청태종)는 15만 대군을 휘몰아 조선을 침략해 온다. 명을 공격하려는 청은 배후의 조선을 제압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9년 전에도 후금의 침공으로 강화도로 파천하는 치욕을 당했지만 조선은 여전히 성리학의 명분론과 국제정세에 어두운 친명배금의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병을 앞세운 청의 대군은 단 한 번의 조선군 저항도 받지 않고 파죽지세로 개성을 지나 서울에 육박하였다. 싸울 것인가, 강화할 것인가도 결정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전략도 없이 우물쭈물하던 조선 조정은 뒤늦게 강화도 파천 길에 올랐지만, 청군에 의해 길이 막힌다. 방향을 돌려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인조의 조선 조정은 이듬해 1월 말까지 47일간의 참담한 치욕의 과정을 겪는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패전의 역사를 되새기는 애국 소설이거나 충신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대쪽 같은 조선 선비의 기개를 기리는 소설쯤으로 알았다. 그러나 작가 김훈은 서두에서 “나는 아무의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 건국 후 200년이 지난 조선 사회는 사대부라는 소위 대쪽 같은 충신 집단을 길러냈다. 그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배계층이다. 외침을 당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 나라를 구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이 소설은 그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비겁했었는지 그래서 이 나라가 얼마나 비참했었는지를 냉정하게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인조가 성문을 열고 나가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47일간의 일들 속에 들어 있다.
  대륙의 신흥 군주 청태종은 처음부터 조선왕의 성과 세력을 섬멸해 버릴 생각이 없었다. 왕과 지배 세력이 없어진 조선 땅은 그들로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성을 포위하고 압박해서 항복을 받아내고 가혹한 착취와 함께 인질을 잡아가서 조선국을 자신들의 휘하에 두는 편이 훨씬 간편하고 이득이 많다. 그래서 청군의 주력은 남한산성에 대하여 한 번도 공성전을 시도하지 않았다. 또한 용골대가 망월봉에 설치한 홍이포 포대에서도 조선왕의 처소는 포격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청태종을 침략의 수괴라기보다는 진취적이고 허례가 없으며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는 오히려 유능한 군주로 그리고 있다.
  인조를 받들고 있는 조선의 지도층은 사대부다. 그들의 글과 말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도구이고 입신의 방편이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행궁 어전에서 넘쳐나는 성리학의 명분론과 비분강개한 말과 글들은 청군과의 싸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왕을 따라 성에 들어온 사대부들을 부족한 성첩의 군사들 틈에 보충 배치하기도 했지만, 말만 많고 군졸들에게 민폐만 되어 도로 불러들인다. 그들은 무위도식하여 가뜩이나 부족한 군량만 축내는 존재들이었다. 인조는 양서(황해도와 평안도)와 삼남의 군병들을 부르는 격서를 지어서 성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그러나 청군의 포위망을 뚫고 임무를 완수할 사자를 찾지 못해 며칠째 시일을 낭비한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산성 고을의 대장장이 서날쇠가 세상 물정에 밝고 담력이 있음을 알아보고 그를 천거한다. 서날쇠는 허다한 사대부들이 몸을 사리는 임금의 사자가 되어 목숨을 걸고 성 밖 청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 격서를 돌리고 돌아온다.
  성 안에 갇힌 인조는 성문을 열고 나가 청군과 일전을 불사해 볼 의지가 없었다. 영의정 김류는 전시 체찰사의 직을 겸하고 있었지만, 난국을 타개할 경륜이나 책임감이 없다. 감당하기 싫은 일은 교묘하게 임금이나 아래 사람에게 미루는 기회주의자이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사대부 중에서 유일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청과 화친할 것을 간한다. 그래서 많은 간관과 사대부들이 최명길의 목을 베어 내걸고 전국의 창의군을 모아 청군과 일전을 결할 것을 주장한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화친을 반대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는 대쪽 같은 척화론자이다. 전쟁이 끝나고 환도하게 되면 최명길은 임금을 오랑캐 앞에 무릎 꿇린 역적으로 탄핵받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고, 김상헌은 나라가 청에 항복하는 날 척화신으로 청에 의해 처단되기에 십상이다.
  전국의 창의군을 부르는 격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임금은 병사들을 호궤한다. 북문 쪽에서 번을 서는 잡색군 한 명이 임금 앞으로 나와 간한다. “소인들은 본래 겁이 많고, 또 얼고 주려서 두 발로 서기가 어려운데, 예판 김상헌 대감께서 싸워서 지키려는 뜻이 장하다 하니 예판대감을 군장으로 삼아 소인들을 거느리고 나가서 싸우게 하시면 적을 크게 물리칠 것이옵니다.” 임금과 대소신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조롱을 당했지만, 김상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성 안에 있는 절에서 무명 열 동을 조정에 헌납하였다. 병조에서는 무명을 다섯 겹으로 겹쳐 꿰매 성첩위에서 눈비를 가릴 천막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이를 임금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그 작업에 사용할 대형 바늘이 없음이 거론되었다. 말과 글로만 이골이 난 무능한 조정은 이 작은 일도 해결 못 하는 비참한 모양을 드러낸다. 대장장이 서날쇠는 김상헌의 주선으로 적당한 대바늘과 삼끈을 만들어 바친다.
  서날쇠와 함께 조선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 사람이 수어사 이시백이다. 그는 성리학의 명분론 등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은 성을 지키는 초병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시백은 동상에 걸린 군졸들을 보살피고, 무너진 성을 보수하고, 청병의 공격에 대비하여 성 안에 있는 모든 돌을 성첩 위로 모아들인다. 혼신을 다한 그의 노력으로 조선군은 청군의 소규모 파상공격을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조정이 성에서 나갔다. 언 땅이 녹고 냉이가 돋아나는 남한산성 고을에서 서날쇠를 비롯한 민초들은 다시 새해 농사를 준비한다. 병자호란의 역사는 비참함 뿐이지만 우리는 민중들의 끈질긴 삶과 생명력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작가 김훈이 드러내는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작가 김훈의 문장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에서 직설적이고 명쾌한 문장을 배웠다고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수없이 반복되는 인상적인 대구법의 문장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고 그의 문장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남한산성 성벽 위에서 삼전도 들판의 청군 진영을 바라보던 조선군 병사가 들었을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를 들었다. 이 민족이 겪은 비참한 기록이었지만 작은 희망이라도 찾아보려는 바람으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고 읽었다. 깊어가는 겨울밤 독서삼매경에 빠져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이장범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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