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먼바다를 지나온 바람이 작은 섬을 지나질 못하고 있다. 특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학교에서는 머뭇머뭇 떠날 줄 모른다. 짓궂게 태극기를 흔들기도 하고, 교실 유리창을 덜컹거리기도 하고, 화단의 나무들을 마냥 흔들어 놓고는 그제야 떠나간다. 겨울잠을 자던 화단의 나무가 졸린 눈 비비며 교실을 들여다본다. 깜짝 놀라 눈 크게 뜨는 나무, 나무들. 키 작은 나무들은 까치발 들기 바쁘다.
교실엔 한 소년이 마스크를 쓴 채 TV를 응시하고 있다. 소년의 부모와 몇 명의 어른들도 함께 와 있다. 이윽고 TV가 켜지고 영상이 흘러나온다. 화면엔 학교장의 졸업 축하 메시지가 흐르고 소년은 졸업장을 받는다. 또다시 바닷바람이 교실 유리창을 흔들고, 갈매기들의 날갯짓이 부산스럽기 그지없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졸업식이 지난 15일 풍도분교장에서 펼쳐졌다. 전교생 단 한 명뿐인 소년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시즌만 되면 축하 꽃다발과 축하객 그리고 다양한 행사로 시끌벅적하지만 코로나19가 이 또한 확 바꾸어놓고 말았다.
풍도분교장은 1933년 진명학원으로 개교, 1948년 대부국민학교 풍도분교로, 한 때는 풍도국민학교로 승격되기도 했다. 1986년 대남국민학교 풍도분교로, 그 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뀜에 따라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장이 되었다. 섬마을의 유일한 배움의 터전도 도시화의 물결을 거스르질 못했다. 주민들은 떠나고 자연스레 학생 수도 격감하고 말았다. 3년 전, 몇 명 안되는 학생마저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소년만 남게 되었다. 현재 50여 가구 중 학령기 자녀를 둔 주민이 없어 1년간 휴교한 뒤 폐교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풍도는 안산 9경(安山九景)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천혜의 관광지이다. 면적 1.84㎢의 아담한 섬이며 대부도에서는 약 17㎞가량 떨어져 있다. 본래는 남양군 대부면에 속했으나 1914년에 부천군으로 편입되었고, 1973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4년 안산시에 편입되었다. 사계절 관광객들이 찾아오지만, 이른 봄이 되면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야생화가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2015년 산림청 선정, 대한민국 야생화 100대 명소 중 하나가 풍도의 후망산이다. 보이는 곳마다 야생화의 천국이다. 풍도에서만 자라는 ‘풍도대극과 풍도바람꽃’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풍도에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온 사람은 없을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섬엔 아픈 사연도 간직하고 있다. 1894년 청일전쟁 때 ‘풍도 해전’이 터졌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해전과는 달리 미미하게 알려지고만 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과서엔 상당히 비중 있게 ‘풍도 해전’을 다루고 있다 한다. 가슴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지난 연말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5천182만9천23명으로 전년보다 2만838명이나 감소했다.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아져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인구절벽 시대를 맞고 말았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은 요원하기만 하다. 내놓은 출산정책마다 땜질 처방 격이어서 젊은 층은 외면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번 풍도분교장의 졸업 풍경도 인구절벽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소년의 가슴에 이번 졸업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 소년이 졸업한 학교는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까? 귀어 청년들로 인해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피어나는 학교가 될까? 아니면 텅 빈 학교, 추억 속으로만 침잠하는 학교가 될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자라던 나무들은 어떤 나이테를 만들며 자랄까?
풍도분교장의 졸업 동영상이 많은 상념 속에 젖게 만든다. 단 한 명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먼바다의 바람도 찾아오고, 갈매기도 찾아왔을 야생화의 천국 풍도. 올해엔 바람꽃과 복수초꽃, 노루귀꽃 들이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릴 것만 같다.
졸업은 또 다른 출발이다. 희망과 미래를 꿈꾸는 뜻깊은 졸업이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구석으로 찬 바람이 휭하니 불어오는 풍도분교장의 졸업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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