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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킹
  • 안산신문
  • 승인 2021.02.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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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1414년,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사는 궁궐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영토 확장을 위해 아프리카까지 원정 다녀온  항해가 정화는 케냐에 원정을 갔다가 살아있는 기린을 황제에게 선물로 바쳤다고 했다. 중국의 전설에는 기린이 나타나면 어진 성인이 출현하고 세상이 태평해질 징조로 인식되어 왔다. 폭군이었던 ‘영락제’는 스스로도 성군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눈앞의 기린이 실제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린을 제일 좋아한다. 키 큰 기린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신비하고 평화스러워보여서이다. 그래서 동물원엘 자주 간다. 동물원의 기린 사육장은 생각보다 초라하다. 맨흙바닥과 인공바위뿐 나무 그늘도 없다. 기린은 모두 여섯 마리였다. 녀석의 기다란 목에 손을 대면 보드라운 털이 아니라 파충류의 그것처럼 미끈거리는 살갗이 느껴질 것 같았다. 기린과 관람객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나는 기린을 키우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일었다. 말이나 소를 키우듯이 기린도 키우지 말란 법은 없었다.
 동물원 관리소에 가서 기린을 분양 받을 수 없는가를 물었다. 동물원에서 새끼를 낳으면 더 이상 개체수를 늘릴 필요가 없는 동물은 일반인에게 분양한다는 내용을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동물원 책임자는 기린은 개인에게 분양하지 않는다고 했다. 설령 분양한다고 해도 아파트에 사는 내가 어디서 기린을 키울 것인지. 그래도 분양만 된다면 시골에 가서 한 마리 키워볼까 생각이었다.
 그날은 혼자 동물원에 갔다. 과천 동물원 앞에 주차할 무렵,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비가 내렸다. 차에서 우산을 꺼내 쓰고는 천천히 동물원 방향으로 걸었다. 동물원은 10시부터 개장을 하였다. 비가와도 등산하거나 놀이공원에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기린사육장으로 갔다. 비가 내리는데도 기린들은 나와 있었다. 여러 마리 중에 두 마리가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두 마리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것을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왼쪽에 있던 놈이 먼저 긴 목을 휘둘러 옆에 있는 기린의 목을 쳤다. 그러자 오른쪽 놈도 목을 타원형으로 한 번 휘둘렀다가 왼쪽 놈에게 부딪쳤다. 팽팽히 땅을 딛고 선 네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목만 부딪치는 싸움이었다. 다른 기린들은 나무에 목을 기대거나 무리지어 다른 쪽에서 어슬렁거렸다. 동물원에는 초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고 관람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두 놈의 싸우는 소리가 ‘퍽, 퍽’, 아주 가끔씩 들렸다. 기린의 발만 쳐다보고 있으면 둘이 싸운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암놈을 차지하려고 이렇게 싸운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검은색 비옷을 입은 사육사가 안에서 나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기린 사육장 앞에 있는 관람객은 나 혼자였다. 나는 우산을 약간 들어 올리며 사육사를 쳐다봤다. 사육사는 싸우는 기린의 뒤로 가서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둘을 갈라놓으며 신사다운 싸움이라고 했지만 나는 놀란 가슴에 뒷걸음치고 말았다.

현실이라는 굳건한 땅위에 두 발을 버티고 싸우는 기린. 기린의 싸움을 넥킹이라고 한다. 동물의 세계는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먹이를 먹고 암컷을 차지한다. 인간의 세계도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이긴 자만이 존재한다. 과거의 공동체 생활에서는 조금 모자란 자도 어울려서 함께 살 수 있었지만 현대는 어림없는 소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속임수나 비열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동물들은 패배를 인정할 줄 안다. 이긴 자에게 암컷을 약속을 지키는데, 유독 인간은 뒤돌아서서 상대에게 비수를 꽂는다.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본받는 게 인간의 도리이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설치는 세상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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