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입춘이다. 너무나 혹독했던 지난겨울, 생각만 해도 봄이 성큼 와있는 느낌이다. 볕바른 밭둑에 냉이를 캐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이다. 입춘은 새해 첫 번째 맞는 절기로 봄이 시작된다는 날이다. 양력으로 2월 4일과 5일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3일에 있는 경우도 있다. 올해가 그런 경우이다. 입춘시는 3일 오후 11시 59분이다.
예로부터 농업을 중시해온 우리나라는 절기 때마다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았다. 입춘이 되면 보리뿌리와 날씨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입춘날 캔 보리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풍년, 눈이나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고도 믿었다. 자연스레 입춘에 관한 속담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입춘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 등을 들 수 있다.
입춘의례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것이다. 입춘축은 봄이 온 것을 축하·기원·경계 등의 내용을 적은 글로 입춘시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조상들이 입춘절기를 얼마나 중요시하게 여겼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글귀이다. 유년시절만 해도 입춘축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주거환경의 빠른 변화로 도시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입춘축 문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봄과 함께 경사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기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요즘은 입춘시를 거의 무시한 채 입춘축을 붙이는 가정이 있을 뿐, 입춘 절일(節日)로서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아야 한다. 대신 컴퓨터나 모바일로 입춘축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한 지자체를 비롯, 여러 기관에서 입춘축을 미리 써서 원하는 가정에 무료로 배부해주기도 한다.
입춘축처럼 나라가 평안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년 12월,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가 아시타비(我是他非)와 후안무치(厚顔無恥)였다. 아시타비는 정치권의 내로남불을 빗댄 신조어이다. 후안무치는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으로 정치인을 꼬집는 말이었다. 그 사자성어들이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더 독한 사자성어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다.
4월로 다가온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서로간의 내로남불로 국민들을 불안 속에 빠뜨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 관련 자료가 감사원 감사 직전 무더기로 삭제된 것이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원전 중단 북한엔 원전건설 지원, 이게 정말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늘이 조각날 일이다. 여당은 선거용 북풍공작으로 몰아가고, 야당은 대통령 국정조사로 맞서고 있다.
작년 12월 감사 전날, 원전 주요자료를 삭제한 공무원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삭제한 이유가 “신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였다. 일개 공무원의 입에서 그런 진술이 나올 수가 있을까? 뒤를 봐주는 윗선이 없고서야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정부에서 담뱃값과 주류 인상 추진을 하려다가 성난 여론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국민의 건강은 허울이고 또 증세가 목표였던 것이었다. 자칭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가 수신료 인상안을 또 들고 나왔다. 정말로 국민을 위한 방송이면 시청료 인상안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해온 방송사이다. 시청료 폐지 거부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를 더욱 높이며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 나겠습니다’ 2021년 KBS의 방송지표이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계속 외면당할 것이다.
보궐선거가 가까워올수록 가짜뉴스와 황당무계한 정책들이 국민들을 현혹할 것이다. 재난지원금으로 곶감 먹이듯 국민들을 홀리게 만들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것도 바짝 차려야 한다. 울화만 치솟게 하는 정치권, 대한민국의 입춘은 멀어도 한참 먼 느낌이다. 꽃집에는 프리지어 꽃향기가 넘친다. 매화가 봄을 알리는 꽃망울을 톡톡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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