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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
  • 안산신문
  • 승인 2021.02.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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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세<작가>

봄은 왈츠의 선율을 타고 온다. 따뜻한 봄의 기운이 나비의 날갯짓으로 하늘거리면, 따스한 봄빛이 차가운 대지에 온기를 뿌려준다. 거대한 대지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종달새는 다투어 오는 봄을 알린다. 철 이른 봄꽃은 울긋불긋 꽃단장을 시작한다. 내가 보았던 어릴 적 봄날 풍경이다.
지난해 봄 어느 날 안산천 옆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발밑에 연두색 애벌레가 길을 가로질러 바삐 가고 있다. 온몸이 노출되어 새의 먹이가 되거나,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서 쓰고 지쳐 쓰러질 것이 틀림없다. 발길을 재촉하며 걷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애처로운 애벌레가 뇌리를 맴돈다. 발길을 돌려 녀석을 길 건너 풀숲에다 놓아 주니 신이 난 듯 풀숲으로 들어간다. 허리를 숙여 바라본 풀숲에는 각종 곤충의 애벌레가 천국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풀숲에는 그들만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낮은 천변에서는 어른 팔뚝만 한 잉어 수백 마리가 파드득거리고 있었다. 암컷이 방금 산란한 알 위에 수컷이 수정하고 있었다. 생명 잉태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자연의 풍경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대여섯 마리의 집오리 틈에 끼어서 외로운 철새 왜가리 한 마리가 애처로이 놀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고향으로 떠나지 못하고 텃새가 된 것일까? 예전보다 맑아진 안산천에서 정겨운 동물 가족과 눌러살기로 작정한 것일까?
새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먹이도 받아먹으며 친근감을 보이며 어울려 살아간다. 비둘기며 참새 등은 사람이 지나가도 슬쩍 비켜 줄 뿐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가의 커다란 잉어들도 사람의 그림자를 보면 따라다니는 것이 강아지를 닮았다.
언제부터 인가 십여 마리의 거위 가족도 보인다. 거위는 오가며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어 주기도 하고, 사람들과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사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다. 새끼 오리를 돌보는 어미는 부지런히 천변을 오가며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 먹인다. 그 모습을 보려고 자녀를 데리고 구경나온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자연과 함께, 동물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마도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여 본다.
매년 수없이 안산천 주변을 오갔지만, 그저 무관심으로 지나쳤던 천변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봄에는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신비롭다. 그전에는 이런 경이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독한 겨울이 너무 추웠기 때문에 봄이 온다는 희망을 잃고 살아서일까?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선별하여 나름대로 각색하고 왜곡하여 본다. 왜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일까? 내가 느끼고 바라본 환희에 찬 봄은 다른 사람은 다르게 볼 것이다. 즉 같은 풍경도 자신의 근기(根氣)대로 보고 느끼기 때문에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다.
불가에서는 실상(實相)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가르친다. 즉 세상을 나의 주관으로 보지 말고, “자연의 본래 모습”을 느끼라고 한다. 그래야만 사물의 본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시 세상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지상낙원이었다. 그러나 나의 주관으로 보는 자연의 모습은 모두 왜곡된 모습이다. 나의 업식(業識)이 자연의 본래 모습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본 자연은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었다.
그동안 내 생각대로 멋대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 탓을 하며 살아왔다. 검은색 안경을 쓰고서는 세상이 어둡다고 불평하면서 살아왔다. 즉 나의 주관대로 세상을 바라보고는, 내 생각이 모두 맞는다고 고집하는 우(愚)를 범(犯)하며 살아왔다.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라 하였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부정적인 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는 온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일 리가 없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세상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두렵지가 않다고 한다. 진리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면 나도 자유인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얻기 위해서는 우선 비워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모두 비우고 하심(下心)으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절정을 나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진리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직시(直視)할 줄 알면 세상의 살아가는 이치가 보이고, 자유로운 삶이 보인다는 사실을 늦은 나이에 알았다. 여생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 세상을 직시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야겠다.
유례가 없는 코로나 19사태로 너나 할 것 없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을 본래 모습을 직시 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른다면 세상이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도 슬기롭게 이겨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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