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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2.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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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몇 년 전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은 그의 책《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에서‘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용어를 소개한 바 있다. 새롭지만 너무나 익숙했기에 당시의 나는 단어를 읽는 것만으로도 몇몇 얼굴을 떠올렸다. 그것은 오래 입다 못해 거의 한 몸이 되어버린 내의를 문득 내려다본 느낌과 비슷했다. 그러나 언제 한번 훌훌 벗어 깨끗이 빨아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마음. 바로 그런 마음으로 그의 책 읽기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후속작《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 이제는 한번 읽을 때도 됐지, 하는 마음과 더불어 책장을 넘기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전작과 달리 제목의 초점이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이야 안팎으로 지겹도록 보아왔으니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니 아차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작가는 자신의 저서관련 인터뷰 도중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자는 남자였고 심지어 정치관련 책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어떠한 대답을 내놓아도 만족하지 않고 집요하게 되풀이 된 그의 질문은 차라리 단언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너희가 틀렸다고 단언하는 말.’그것은 이처럼 때로는 질문의 형태로 때로는 가르침, 조언, 격려, 농담 등의 형태로 교묘하게 모습을 바꾸어 여성을 억압하고 주눅 들게 하며 침묵으로 이끈다. 정당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이 상황의 바탕에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있다. 가부장제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침묵을 요구한다. 일찍부터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감정을 도려내도록 교육받는 것이다. 그러나‘온전한 감정을 포기하는 것은 남자들이 힘을 얻고자 치르는 대가’이기에 여성의 경우와 포개어 생각할 수 없다.
  명백한 피해상황에서조차 침묵을 강요당하는 여성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예술전공 학생 에마 설코위츠는 자신을 기숙사 침대에서 강간한 학생을 고발하였으나 충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캠퍼스에 머무르는 내내 침대 매트리스를 이고 다니기 시작했다. 곧 이를 본 학생들은 남녀 할 것 없이 그녀의 매트리스를 대신 들어주는 것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강간은 여성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강간범이 일으키는 것이므로, 비난 역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설코위츠는 강간을 눈에 보이는 짐으로 바꾸었고’, 침묵하는 대신 ‘수치심의 화살을 그 합당한 소유자에게 돌려’주었다. 이 얼마나 유쾌하고도 명확한 해결방법인가.
  가부장제의 오랜 지배 속에서 갇혀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이제는 서서히 깨어지고 있다. 여성은 티비 쇼에서 강간 농담을 일삼던 코미디언에게 “재미없다”고 맞받아치고, 롤리타가 성폭력 피해자의 범주에 속한다는 의견을 당당하게 내보인다. 차츰 이에 동의하는 남성들도 용기 내어 여성들과 연대하고 있다. 이야기가 침묵으로 고립된 이들의 경계를 지우고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직도 페미니즘이 상대 성(性)에 대한 억압이나 공격이라고 느껴진다면 리베카 솔닛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의 혁명은 모든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 진행 중이지만, 벌써 모든 지도를 바꿔놓았고, 앞으로도 더 많이 바꿔놓을 것이다.’      

이주현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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