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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1>책장 하나 갖는 것이 소원
  • 안산신문
  • 승인 2021.02.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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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71년쯤 영등포 헌책방에서 산 책인데, 1969년에 발행했다. 아직도 책갈피가 남아있고, “성탄을 축하 하오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969. 12. 23” 이라는 글이 뒤 속표지에 적혀있다.

 “어떤 물건이 이다음에 문화유산이 될지 당대에는 모른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물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수집가의 몫이다. 수집가가 수집하지 않은 물건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건처럼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다.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그 결과물이 휴대전화 박물관이다.” - 이병철의 저서 ‘수집의 철학’ 중에서 -
 
   책장 하나 갖는 것이 소원

   누군가 묻는다. 책을 왜 모으냐고. 글쎄 책을 왜 수집하지? 스스로 다시 자문해본다. 책을 모으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여러 번 생각해 본 결과 명쾌하지는 않지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이 좋아서다. 뭘 사려고 할 때 책보다 더 좋은 상품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도 서점엘 간다.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지만, 학습서를 구입한 적은 없다. 두 번째는 이루지 못한 욕구를 충족을 위한 것. 책을 알만한 어린 시절에 너무 가난해서 책을 사볼 여유가 없었던 데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어떤 때는 책의 결핍이었던 시절을 보상하려고 책을 막 사들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쇼핑 중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주변에 책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책의 좋은 점을 익히게 되어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한 친구 집에 가면 늘 부러웠다.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집은 양옥집인데 큰 책장이 있는 방까지 따로 있었다. 책장 가득한 동화책과 여러 어린이 책들을 읽어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어렵사리 책을 빌려 빨리 읽고 또 빌려 오길 반복했다. ‘이솝우화’를 빼곤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날질 않지만, 그 친구가 함께 책을 좋아하던 그때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온갖 책들을 읽었는데 그중에 무협지도 있었고, 연애소설도 많았다. 우연히 알게 된 박계주 선생의 ‘순애보’도 이 시절에 밤새워 읽어 보고, 다시 읽었다. 꿈속에서도 주인공이 등장했을 정도다. 나중에 친구에게 주었다. 또 하룬 친한 교회 친구 집에 갔었는데 너무 놀랐다. 작은 골방 바닥에 종이쪽지가 가득하고 벽에 기대어 있는 작은 책장엔 교과서에 나오는 고전들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톨스토이(Lev Tolstoy)와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등 러시아 소설가 소설들이었는데 겨우 소설가 이름만 외우고 있는데 그 책들을 다 읽었다니 입이 떡 벌어졌다. 널려있는 종잇조각에는 온통 그 친구가 쓴 글귀들이 빼곡했다. 친구 집을 다녀오고 나서 꿈 하나가 늘었는데 ‘작은 책장’ 하나 갖는 것이었다. “글 한 편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친구의 재능을 부러워했고, 살짝 작가가 되면 참 좋겠다는 남모른 다른 꿈도 만들었다. 친구는 나중에 시인이 되었다. 지금도 친구 눈에는 필자가 아마추어 책 사랑꾼으로 볼 테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부산엘 달려갔다. 왠지 부산 바다가 좋았다. 어릴 때 친척과 간 항구와 자갈치 시장이 아직도 기억 속에 뚜렷이 자리 잡고 있다. 역동적인 항구 분위기가 좋았다. 영도 산복도로에는 오촌 고모 댁이 있었다. 육촌 형과 누나가 있었는데 누난 한 살 위고, 형은 누나보다 두 살 위니 필자와는 세 살 차이다. 작은 집이었지만 책장이 두 개나 있고, 각각 자신의 책 정돈을 잘해 놓았다. 남매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인데 대화 속에 유명 작가와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필자는 도무지 끼어들 수가 없었다. 대화 중에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단어는 ‘무신론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과 ‘데미안’이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헌책방에 가 레셀의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 아닌가?’와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의 ‘데미안’을 구했다. 두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이젠 줄거리조차 떠올릴 수가 없다. 지금도 그 친척에겐 과묵한 친척 동생으로 남아있을지도.

처음으로 구입한 조립식 4단 책장은 결혼할 때도 가지고 있었는데 1997년에 다른 집으로 옮기면서 동생에게 주었다. 사진의 책장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30여 개의 책장 중 가장 비슷하게 생긴 책장이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가졌던 위의 인연 속 주제는 ‘책장’이다. 한정원이 지은 책 ‘지식인의 서재’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낯선 집에 가면 그 집의 책장에 꽂힌 책들과 살짝 열린 서재에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문다. 책은, 그리고 서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서재(書齋)는 ‘서적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을 말한다. 그러니 어떤 서재든 책장이 있게 마련이다. 앞의 글에서 서재를 책장으로 대체하면 부산 이후에 필자의 습관과 완전히 일치한다. 어떤 때는 민망한 상황까지 발생하곤 한다. 남의 사무실이나 서재를 방문하면 인사도 나누기 전에 책장을 먼저 바라보아서다. 어떤 종류의 책이 있는지를 우선 살피고 책장의 디자인과 책장이 있는 공간의 분위기 등도 눈여겨본다. 문제는 필자가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힐끔힐끔 눈길을 자주 옮기는 데에 있다. 손님의 그런 태도는 암만 무딘 사람도 금방 알아채기 마련이다. 당연히 실례가 되는 행동이다.
   때론 책에 홀린 태도가 오히려 성과를 나타내곤 한다. 대화 상대는 혹 내 책장에 좋아하는(또는 노리는) 책이 있나 생각하고, 책 몇 권을 권해주는 때도 가끔 있기 때문이다. 책값이라야 한 권에 3만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문데 예기치 않은(어쩌면 기대한) 책을 받는 필자에게는 몇십만 원 이상의 가치로 다가온다. 그렇게까지 진행되면 대화도 즐거워지고 인연은 더 깊어진다. 필자에겐 책으로 맺어진 인연은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사귄 책 친구가 있는데 파주시 헤이리 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서적 편집 전문가다. 그 집 응접실에 있는 책장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책장 중에 하나다. 책이 너무 가지런하지 않게 서 있어서 좋고, 그러면서도 질서가 있어 예쁘다. 책마다 적당히 때가 묻어있어 주인의 내공을 깊이를 알 것 같아서 존경심이 인다. 국산 자연목으로 만든 책장임을 가끔 자랑하는데 그것도 마음에 든다. 묵직한 통나무 책장을 소유하고 싶지만, 아직 여유가 없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허물도 없고, 인스타그램으로 매일 소통도 하니 우연히 맺은 인연치곤 잘 얽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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