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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정월 대보름
  • 안산신문
  • 승인 2021.02.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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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동화작가>

날마다 달이 몸을 부풀리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보름달이야 매달 뜨지만, 여느 보름달보다 이번 보름달은 다르다. 26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음력 1월 15일, 새해 들어 첫 보름달이 뜨는 날로 큰 명절이다. 세시풍속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설날과 추석에 견줄 만큼 크게 다루고 있다. 설,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들어간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 대보름달이 어둠과 질병은 물론 재액까지 막아준다고 믿었다. 한해의 첫 보름달이 주는 그 상징성이 얼마나 큰지 ≪한국의 세시풍속≫ 속에는 ‘우리나라의 세시풍속 행사 중 정월 대보름 행사가 가장 많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 기간이었다.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축제였다.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서도 정월 대보름에 관한 추억들이 제일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월 대보름엔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묵은 나물 및 제철 생선 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빌었다. 열나흗날 저녁부터 보름날 새벽까지 집안을 환하게 불을 켜놓기도 했다. 그래야 좋은 운이 들어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닷가 마을 선주들은 배에도 불을 달아 풍어의 소원을 담았다. 부럼 깨물기, 귀밝이술, 달맞이, 더위팔기, 다리밟기, 액막이 연날리기, 달집태우기 등에 관한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열나흗날 밤, 악동들과 무리 지어 마을 집을 돌며 무쇠솥 속의 밥을 훔쳐 낄낄대며 비벼 먹던 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믿어 끙끙거리며 밀려오는 잠을 쫓던 일, 자고 나면 어른들이 몰래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 그 놀림에 엉엉 울었던 일. 아침이 되면 부럼 깨기 및 귀밝이술 마시기, 쥐불놀이와 무섭게 타오르던 달집태우기 등이 어제 일처럼 환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뒷동산에 올라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떠오르는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빌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절로 질화로처럼 따스해진다.
정월 대보름에는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밥을 주지 않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에 밥을 주면 개의 몸에 벌레가 꼬이고 쇠약해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잘 먹지 못한 개를 가리켜 ‘개 보름 쇠듯 한다.’라는 속담이 생겨나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라는 속담과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라는 속담도 생겼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정월 대보름의 많은 세시풍속이 사라졌다. 지자체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관한 주요 행사를 추진, 그 풍속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전면 자제하고 있다. 그래도 거리를 지나다 보면 대형 마트의 ‘정월 대보름 맞이’ 할인 행사 현수막과 반찬 가게마다 대보름 맞이 음식 판매 광고지가 붙어있다.
배가 절로 불러오는 느낌이다. 나라도 배가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나라 곳간은 비어가고만 있다. 안개 속에 싸인 시국은 시끄럽기 그지없다.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 코로나 백신 문제로 인한 의협의 집단행동, 여전한 국회의원의 막말 행진, 눈뜨고도 놓친 탈북자로 인한 뻥 뚫린 국방문제, 보궐선거와 맞물려 펑펑 써대려는 정부와 여당의 재난지원금 문제…. 이러한 액운들이 액막이 연처럼 모두 날아가는 정월 대보름이 되었으면 한다. 올 정월 대보름에는 귀밝이술도 마시고 부럼도 깨며, 오곡밥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보름 밤에는 동심으로 돌아가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마음만으로라도 그런 여유를 갖는 것도 좋겠다. 휑한 마음에 아늑함과 따뜻함이 가득 찰지도 모른다.
올 정월 대보름, 환한 달을 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달빛 속에 싸인 마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달빛이 그려내는 그림자 또한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기상청 예보로는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예보가 빗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대보름날 아침엔 귀밝이술 한 잔을 꼭 해야겠다. 이름처럼 귀가 밝아지고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을 들을 수 있다면야 서너 잔까지 거푸 못 마시랴. 올 정월 대보름은 힘든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으면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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