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 비룡소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이 말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으레 하는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도 아주 많이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또한 모모 또래의 아이들은 모모만 있으면 언제나 무한한 상상력이 샘솟는 창조적인 놀이를 스스로 만들어 놀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모모가 공감과 관심이 가득한 가슴으로 친구들과 자신의 시간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빛을 볼 때는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들을 때는 귀로 듣는다. 그리고 시간을 느낄 때는 가슴으로 느낀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어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상은 회색신사 집단의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 도둑들이었다. 사람들은 회색신사들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오로지 일만을 생각하고 획일화되었으며 점점 삭막해졌다. 아이들도 탁아소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미래사회에 맞게 트럼프 카드처럼 정형화되어 갔다.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조금 풍요롭게 되었지만 점점 더 시간이 없어졌고 본래 자신의 행복을 잃고 노예처럼 불행해져 갔다. 시간 도둑들의 궁극 목표는 모든 사람의 시간을 훔쳐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모모는 친구들과 함께 회색신사들의 음모를 세상에 알리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도둑들에게 쫓기게 된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모모는 시간 도둑들에게는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적이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거북 카시오페이아를 따라서 간 곳은 우주의 시간을 지키고 시간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호라 박사의 집이다. 그곳에서 모모는 시간의 근원과 시간의 꽃을 보게 된다.
  시간의 근원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의 폭포가 있고 폭포 밑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연못이 있다. 우주의 해와 달과 별과 유성의 운행이, 빛의 폭포에 특별한 영향을 미쳐서 시간의 근원으로부터 영롱한 꽃이 피어 올라온다. 그 꽃은 우주의 운행에 따라 시들고 다시 새로운 시간의 꽃이 계속해서 피어오른다. 모든 꽃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영롱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그 모든 현상과 함께 들리는 나지막한 울림의 음악을 모모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다. 그 소리는 모모가 살고 있는,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거대한 귓바퀴처럼 생긴 옛 원형극장의 둥근 마당에서, 적막한 밤에 들었던 나직하지만 웅장한 그 음악이었다.     
  모모는 사람들의 시간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모모는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세상은 회색신사들에 의해 더욱 각박해졌고 친구들도 모두 시간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모모는 시간 도둑들과 싸워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호라 박사를 찾아간다. 용감한 모모와 카시오페이아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활약이 이어지고, 마침내 시간 도둑들의 금고를 열고 수많은 시간의 꽃들을 해방시킨다. 풀려난 시간의 꽃들은 거대한 폭풍처럼 하늘로 솟아올라 모두 본래의 주인을 찾아갔다. 이제 시간은 다시 흐르게 되었고 잃어버렸던 시간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돌아왔다.
  별안간 모든 사람의 시간이 한없이 많아졌다. 길에서는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주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고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모모와 친구들은 옛 원형극장에 다시 모여서 저 옛날의 별들이 뜰 때까지 파티를 열었다. 사방이 조용해진 밤 모모는 친구들에게 별들의 음성과 시간의 꽃들이 들려주던 그 노래를 불러 들려주었다.
  시간 절약이라는 거짓된 효율성과 성취의 망상에 매달린 현대인은, 절약한 시간을 언젠가는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두 번 다시 삶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시간 도둑, 회색신사들은 현대인을 옥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 부조리를 뜻한다.
  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된 소설 「모모」는, 기적과 신비와 온기로 가득 찬 세계로 인도하는 매력적인 동화라고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77년에 처음 소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그 소식이 역으로 독일 본국에 알려져 미하엘 엔데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 책은 능률, 물질 만능주의 현대산업사회에서 인간중심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번역 소설임에도 간결하고 다정한 말투의 문장으로 동화 읽는 재미를 한층 배가시켜준다.

이장범 수필가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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