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국민의 4대 의무는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이다. 이 중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 되는 것이 납세의 의무일 것이다. 3월 3일은 ‘납세자의 날’로 정부 주관 법정기념일이다. 1966년 3월 3일, 국세청이 발족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세의 날’을 정했다. 조세의 사전적 의미에는 강제성이 담겨있다. 그에 비해 납세에는 강제성이 담겨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2000년부터 부드러운 이미지의 ‘납세자의 날’로 변경하였다. 도긴개긴이다.
세금은 국가를 유지하고 더 나은 국민 생활을 위한 기본 근간이 된다. 세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실소를 금하지 못할 사례들도 많다. ‘창문세, 수염세, 총각세, 모자세, 장갑세, 공기세….’ 지나간 역사의 세금이지만 현대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세금이 있었다. 발트해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의 ‘가축방귀세’를 들 수가 있다. 가축들이 내뿜는 방귀나 트림이 지구 온난화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거센 저항에 부딪혀 폐지되었지만, 이 제도는 많은 나라에 대기환경개선정책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세금은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국민과 많은 마찰을 계속해 왔다. 우리 속담에 ‘사모 쓴 도둑놈’이란 말이 있다. 갖가지 세금과 뇌물 따위로 남의 재물을 탐하는 벼슬아치나 양반을 욕하는 말이다. 사자성어로 대표적인 것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들 수 있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을 뜻하는 말이다. 조선 후기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군적과 세금 대장에 올려놓고, 군포를 받던 일이 횡행하여 백골징포(白骨徵布)란 말도 생겨났다.
과도한 징세는 항상 조세저항을 초래했다. 그 저항은 혁명과 함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곤 했다. 1215년 영국의 의회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대헌장, 1773년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한 보스턴 차(茶)사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기폭제가 된 삼부회 소집 등은 모두 지나친 세금이 출발점이었다. 우리 역사에서도 구한말의 가렴주구가 동학농민봉기를 일으켰고, 부마민주항쟁도 제5공화국의 부가가치세 신설이 기폭제가 되었다. 지난해 여름, 서울 여의도에서도 조세저항 집회가 열렸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엄청난 저항의 파도가 정부를 향해서 몰려갔을 것이다. 이들은 신발을 내던지며 “나라가 니꺼냐!”고 외쳤다. 정부가 부동산을 잡겠다고 쉼 없이 세금을 올려대며 국민의 가슴만 멍들게 만들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직도 집값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래저래 세금 그물망을 피할 수 없는 서민들만 허리가 휠 수밖에. 세금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며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면 위화감마저 생긴다. 그들의 집에서는 현금다발과 귀금속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꼼수를 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억대 세금을 피하려고 위장 이혼한 부부들에겐 무거운 실형과 벌금이 내려졌다. 이런 미꾸라지들이야말로 사회의 암적인 존재이다.
예년보다 세금이 많이 올랐다. 오르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 용도에 따라 화가 치솟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3월에는 정말 놀랄만한 재난지원금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보궐선거가 가까워지자 선심용 지원금들이 마구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화가 치솟는 것이다. 불 보듯 빤한 적자가 예상되는 가덕도 공항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에서는 특별법으로 밀어붙였다. 지역 야당 의원들도 가세를 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의 국민위로지원금까지 나왔다. 선거용이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피 같은 세금이다. 그럴듯한 말로 현혹하려 하지 말고, 실제로 국민에게 세금 체감지수를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세금을 줄여야 한다. 줄여도 팍 줄여야 한다. 세금이라고 흥청망청 써대면 그 피해가 부메랑 되어 또 국민에게 돌아온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난해 모아둔 세금고지서들을 정리한다. 고지서에 혈세를 흥청망청 써대는 괴물들의 얼굴이 겹쳐 나타난다. 한두 명이 아니다. 떼거리로 몰려 나타난다.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뜯긴다는 생각마저 드는 납세자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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