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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의 날
  • 안산신문
  • 승인 2021.03.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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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시공사

 어딘가 뒤틀린 세상이다. 아이는 어른 같고, 어른은 아이 같으며, 누가 악한인지, 누가 선인인지 한 눈에 알기가 어렵다. 하물며 미스테리 소설이란 세상의 이런 면들이 더욱 적나라하게 뒤섞여 보이는 법이다. 정해연 작가의 다섯 번째 장편 미스테리 소설 [유괴의 날]을 읽는 것은 작은 열쇠 구멍 안을 두근거리며 들여 보는 느낌이다. 궁금해 들여다 본 그 구멍 안에서는 어딘가 뒤틀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유괴를 하기로 한 명준은 우연찮게 유괴대상이었던 로희를 차로 치고 만다. 차에 치인 충격으로 기억을 잃게 된 로희는 깨어나 명준을 아빠로 생각하게 되고, 이리저리 부려먹으며 상황을 추측해 나간다, 기억을 잃긴 했으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던 로희는 점점 명준의 수상함을 느끼게 되고, 명준 또한 로희의 부모와 연락이 되지 않자 로희의 집에 찾아가 보지만 실려 나오는 시체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다치는 사람이 없는 ‘유괴의 날’이어야 했을 것이 두 사람의 사망자가 발생한 ‘살인의 날’이 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모든 것은 하루 아침에 다시 뒤집힌다. 아빠인 줄 알았던 명준이 사실은 나쁜 유괴범이었는데, 같이 있다 보니 딸바보인 선량한 사람 같기도 해서 로희는 혼란에 빠진다. 게다가 명준에게는 계획을 짜고 실행시킨 전처 혜은이 있었으며, 어딘가 미심쩍은 보안업체 직원 철원과, 자신의 친부가 비윤리적인 실험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로희가 찾던 살인범의 정체는 더욱더 오리무중에 빠진다.
  하지만 이러한 무서운 일들로 점철된 이야기는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 여기에는 정해연 작가의 속도감 있고 유쾌한 필체가 한 몫을 한다. ‘유괴의 날’이 ‘유쾌의 날’로 읽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바보같은 명준과 신랄한 로희의 케미스트리는 통통 튀는 웃음을 선사한다. 저자 정해연 작가는 사이코패스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다룬 『더블』로 데뷔하였고,  2016년 ‘제2회 YES24 e연재 공모전’에서 일상 미스터리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로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전작들에서 인간의 욕망과 일상의 미스테리를 적절히 잘 섞어 그린다는 평을 받았으며 이번 책에서도 그러한 평가는 변함 없을 것이다.
  부모가 죽고, 유괴를 당하고, 유산상속을 둘러싼 친척들 간의 다툼을 보면서 로희가 유괴범 명준에게 가족의 정을 느끼고, 처벌받지 않게 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 12살의 어린 나이지만 인간의 잔혹함을 두 눈으로 지켜본 로희가 남들보다 우월한 두뇌를 가지고도 자신의 복수나 이익을 따르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은 그래서 유효하다. 불행을 겪는 사람이 모두 사악한 미래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잘못한 사람한테만 불행을 주는 것 같니?”(404쪽)
이렇게 묻는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은 꼭 잘못한 사람에게만 불행을 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408쪽)
이렇게 로희 스스로 다짐하기 때문이다.
  로희가 들여다 본 열쇠 구멍 속의 세계는 일견 끔찍했으나 함께 해준 명준이 있었기 때문에 무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구멍은 그동안은 몰랐던 가족의 의미, 생명의 소중함, 선악의 기준과 윤리의 필요성을 배우는 망원경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모든 불행과 행복, 선행과 악행이 뒤섞인 세상을 그리면서, 이기적 욕망의 절망적인 말로와 유대와 사랑을 통한 희망적인 미래를 동시에 싹틔운다. 그 안에서 어떤 열매를 수확할 것인지는 독자에게 달렸다.

김현숙 (혜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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