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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4>힘들었던 청춘 시절을 지켜준 음악
  • 안산신문
  • 승인 2021.03.2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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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책중에 가장 여러번 열어 본 책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가 지난해 연말에 책 정리를 하면서 찾아낸 필자의 보물 중 하나다.

“그때 음악과 시가 있는 한 영원한 청춘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 그때 우리가 쏘다녔던 골목과 천변은 빛났던가 / 아니 한 장의 나뭇잎조차 빛나지 않았다 / 우리가 빛이었으므로 가슴 근처에 잡히는 멍울은 / 울음이 아니라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다 / 하기는 울음이 곧 음악이 아닌 적 있었던가 / 다만 슬프지도 격렬하지도 않을 뿐이야 / 그렇게 생각했었다” - ‘강연호’의 시 ‘음악’의 전반부(푸른 하늘의 음악 시 모음에서 인용) -
 
   힘들었던 청춘 시절을 지켜준 음악

   음치여도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나 음정과 박자를 잘 맞추는 것이 필자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엔 크게 부르는 것으로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다. 그나마 성적을 잘 받으려는 방법. 음악 과목은 저학년 시절엔 노래 한 곡 부르는 것으로 그리고 고학년 때는 약간의 이론 시험을 보았었다. 그래도 잘 버텼다. 유전인지는 몰라도 친가나 외가도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클래식은 더더구나. 동요 ‘고향의 봄’과 ‘반달’, ‘초록 바다’ 등 몇 곡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가 음악 세계 전부였다. 어린 시절 귀에 익었던 노래는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김상희 ‘대머리 총각’, 남일해 ‘빨간구두 아가씨’, 박제란 ‘산 너머 남촌에는’ 등 있었으나 가장 열심히 따라 불렀던 곡은 쟈니 브라더스의 ‘빨간 마후라’였던 것 같다. 골목을 뛰어다니고 방학 때 시골 친척 집에 가서도 늘 이들 몇 곡을 흥얼거렸다. 가곡 중에는 기억나는 것은 고모가 잘(아니 자주) 불렀던 ‘그 집 앞’과 ‘가고파’ 정도다. 중학교에 와서는 음악 시간이 작은 공포였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불러내어 놀랠 부르게 하고 음정과 박자가 맞을 때까지 반복해서 시켰다. 내 차례가 오지 않기를 늘 기도하곤 하였다.
    동작구 대방동에서 대로변 아주 큰 집에 셋 방에 살았다. 주인 세 대까지 열 가구 정도 사는 집이었는데 주인 할머니는 인정은 많으나 작은 국가(?)의 독재자 호랑이였다. 큰 대청마루엔 그 집 전체에서 유일한 TV가 있어 아주 가끔 그곳에서 뉴스나 노래 프로그램을 보았다. 중학교 어느 날 할머니 눈치를 보며 노래를 듣는데 지금까지 듣던 노래와 완전히 다른 노래가 나왔다. 튄 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이었다. 필자에겐 파격이었고 충격이었다. 사춘기 청년의 마음속을 휘젓고 나가는 곡과 가사가 너무 새로웠고, 가수 두 사람은 멋졌다. 그렇게 시작된 전통가요와 이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안내로 교회를 가면서 새로운 음악 시대를 만나게 되었다. 야유회엘 가면 다들 포크 송과 팝송을 불렀다. 필자는 시대 뒤떨어진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그들이 나누는 노래 소식의 원천은 FM 라디오 방송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늦은 밤에 음악 방송은 젊은 청춘들의 소통광장이었고 다들 그 속에서 위안과 즐거움을 찾았다. 어렵게 산 라디오와 몇 권의 책이 전 재산이었지만 필자는 재력가가 된 기분이었다.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와 ‘별이 빛나는 밤에’를 번갈아 가며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꿈속으로 들었다. 어떤 때는 옆 방에서 ‘학생 라디오 좀 꺼’하는 소릴 듣곤 했지만 고단한 삶을 살던 그들도 필자의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여전히 가요를 들었지만, 당시 형들이 있거나 음악적 소양이 있는 친구에게는 “아직도 뽕짝을 들어?” 하는 소릴 들어 무안을 당하기도 했다. 친구 소개로 가게 된 교회에서 음악 정보를 많이 얻게 되어 포크 송에서 팝송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교회 고등부에서 노래를 좋아하는 모임도 생겼다. 2학년 때엔 문화부장이어서 문학의 밤을 기획하고 초대 손님을 섭외하는 역할를 하였다. 물론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시간도 있었지만, 기타 치며 노래하는 시간이 하이라이트가 되게 시간을 배치하였다. 노래 중에는 ‘렛 잇 비 미(Let it be me)’가 있었다. 자연 다른 교회에서 온 고등학생들과 환호하는 시간을 가지고 잘 끝났지만, 다음 주일에 필자는 문제 학생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는 ‘You’re the reason’처럼 낭만적인 곡들이 많았다. 아마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들었을 것이다. 첫 가사에도 있지 않은가? “You’re the reason I don’t sleep at night”.

이렇게 아주 긴 서론을 이어간 것은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외국 팝송들의 가사가 적혀있는 책  ‘오늘의 팝송’이다. 1966년에 출판된 것으로 유명한 DJ 이종환이 편집한 것이다. 속 표지에는 ‘26. may. 70. 居昌 샛별 書村’이라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필자가 구입한 시기는 1971년쯤으로 짐작된다. 이젠 낡고 표지도 너덜너덜해졌지만, 필자 곁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소중한 추억을 담아 책장에 남아 있어서 가장 아끼는 책 중 하나다. 차츰 음악은 친구가 되었고 점점 포크와 락 음악에 빠져들었고, 공부보다 훨씬 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작은 음악회를 찾아다니고, 김민기, 양희은, 쉐그린(당시엔 그룹사운드) 등의 노랠 들었다.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로 국내에서 유명해진 미국 록 밴드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과 친구 형들을 통해 화음이 최고인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Crosby, Stills, Nash And Young)도 알게 되었다. 국내 포크 가수와 밴드들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옛 포크 그룹인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와 브라더스 포(The Brothers Four) 그리고 밥 딜런(Bob Dylan)과 조앤 바에즈(Joan Baez) 등도 좋아했다. 헤비메탈 록에까지 관심을 가지면서 그 영역을 더 넓혔다. 공부도 못하고 클래식을 모르는 낭패감과 열등감을 조금은 메꾸어주어 일종의 자존감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열거한 가수나 밴드의 노래들은 지금도 자주 들으며 그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린다. 자주 가던 청계천 책방에서 외국 밴드가 있는 책을 찾아 책장에 잘 두면서 스스로 큰 만족감까지 느꼈다. 밥 딜런이 2016년에 "위대한 미국의 전통 노래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한"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는 그의 책 한 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분실되어 책의 제목도 잊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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