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4월이 오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첫 행부터 우리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하고 있다. 비평가들에 따라 잔인한 4월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에는 4월에 가슴 아픈 사건들이 많았다. 제주 4·3사건, 4·19혁명, 4·16 세월호 참사 등으로 4월이면 엘리엇의 시구절을 즐겨 인용하고 있다.
시의 첫 행처럼 우리에게 잔인한 4월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잔인한 보다 더 센 잔혹한 4월이 될지도 모른다.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전직 두 시장의 공통점은 성추행이었다. 한 사람은 성추행사건이 터지자, 바로 다음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떤 방법으로 자살을 했는지 국민은 모른다. 그저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소문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 와중에 정부는 5일장으로 그의 죽음을 미화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의 이미지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피해자를 ‘피해호소자’라고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말도 만들어 퍼뜨리고, 피해자를 2차 3차 죽이는 수법도 계속 써왔다. 부산 시장도 도긴개긴이다. 성추행은 물론 그 친척들이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에 수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밝혀졌다.
이번 보궐선거 비용으로 8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쏟아붓는다. 가뜩이나 나라의 곳간이 메말라가고 있는 판에 800억 원을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야 하니 또 화병이 도지는 판이다. 애초 더불어민주당의 당헌대로라면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 끝도 없는 정권 욕심에 당헌까지 바꾸어가며 후보자를 냈다. 여당과 야당의 후보자들이 얼굴 알리기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황당한 정책도 쏟아지고 있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황당한 정책은 더 많이 쏟아질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은 이 정부의 주특기인 재난지원금을 또 들고 나왔다. 당선이 되면, 서울시민에게 1인당 10만 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또 낚싯밥을 던지겠다는 이야기이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이 부적합 판정을 내린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겠다며 특별법까지 만들어 통과시켰다. 최대 28조 원이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사업인데도 다수의 힘을 이용, 예비 타당성 조사마저 짓밟아버렸다.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가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 후폭풍이 거세게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피해자가 기자회견에서 피해호소인 3인방인 남인순·진선미·고민정 의원을 거론하며 징계해 달라고 했다.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자라며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뻔뻔하게 불렀던 3인방이었다. 사퇴 이유에 전혀 신뢰가 가질 않는다. 미사여구에 불과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해 드릴 수 있을까. 지난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이 말을 곧이듣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보궐선거가 아니었으면, 특히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사퇴를 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다음날, 이 세 사람은 쫓기듯 박 캠프 직책에서 물러나는 추태를 보였다. 친여 계열에서 피해자의 기자회견을 불법 선거 운동으로 선관위에 신고했지만, 불법 운동이 아니란 대답을 들어야 했다.
똥줄이 타도 된통 탔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직무대행은 성추행 피해자에게 “다시 한번 당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낙연 대표는 전남 순천까지 내려가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도와달라고 읍소를 했다. 정계 은퇴한 이해찬도 그의 주특기인 독설로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야당도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다. 안 후보와 오 후보의 지루한 기 싸움이 계속 이어지다 여론에 밀려 단일화에 합의를 했다. 25일 전에는 그 결과가 나올 것이다. 탈락한 사람은 깨끗하게 승복을 하고 함께 선거판에 나서야 할 것이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보궐선거일 4월 7일. 우리에게 잔인한 4월로 기억될지, 아니면 더 혹독한 잔혹한 4월로 기억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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