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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안산신문
  • 승인 2021.04.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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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비젠탈, 뜨인돌 출판사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스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배경으로 하는 책이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후 70여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600만명이 죽은 대량 학살에 대해 더 이상 자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일종의 무언의 합의에 의해서 독일은 자신감과 냉정함을 회복함으로써 세계 여러 나라 사이에서 이전의 지위를 되찾았고, 지금의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이 당한 폭력을 고스란히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저지르는 만행에 세계 각국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독일이 과연 과거의 범죄를 제대로 뉘우쳤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른바 용서와 화해라는 미명하에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조직적 학살 행위가 흐지부지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역사의 심판은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수용소 생존자이자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운영하며 나치 법죄자들을 추적한 시몬 비젠탈의 질문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용서와 심판에 대한 우리의 신념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1940년대 초, 폴란드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노역 중이던 시몬 비젠탈은 독일군 임시병원에서 죽어가던 나치 장교를 만난다.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유대인 학살의 잔상에 시달린다. “제 눈앞에 온몸에 불이 붙은 가족, 아이를 안고 있던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저는 죽기 전에 제 죄를 자백하고 싶었습니다...저는 마음 편히 죽고 싶습니다. 제발...저는 누구든지 유대인을 만나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시몬 비젠탈은 용서를 구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그에게는 과연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고, 그에게로 많은 저명인사들의 답변이 이어진다.
 먼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인사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든다.
 유대학자 슈재너 헤셸은 살인과 명예 훼손은 이전과 똑같이 복구될 수 없기 때문에 참회는 가능하지만 용서는 불가능 하다고 말한다. 작가 레베카 골드스타인은 종교적 양심으로 뒤늦게 참회하는 것은 면피성 발언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또한 나치장교는 그 학살 이전부터 유대인에 대한 차별적 가혹 행위에 가담하였고, 그의 죄의식은 학살 경험에만 국한될 뿐 결코 유대인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카톨릭 신학자 에바 플레이슈너는 용서는 변화된 가르침과 행동의 증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희생자의 회복이나 가해자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참회는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반면에 티벳의 승려 달라이 라마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우리가 용서해야 한다고 한다. 다만 다시는 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죄를 인식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아공 카톨릭 주교 데스먼드 투투는 분열된 세계의 치유와 화해를 가져오기 위해 복수보다 용서를 택할 것을 권한다. 중국 인권 운동가 해리 우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무지에 의해 양심과 인간성을 버린 스스로도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겠지만, 개인보다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 비극을 잊지 않도록 해 준다. 우리가 이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우리는 훗날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P.194)
 오늘 날에도 조직적이고 반인륜적 범죄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과거의 전쟁 범죄 및 학살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세월과 함께 힘을 잃었고, 평화와 화해를 이유로 너무 쉽게 정치적 용서를 남발하며 가해자의 책임과 사죄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희생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지내게 되고 가해자들은 반성을 통해 얻는 수치심과 인간다움을 영원히 잃게 되었다. 용서할 것인지 아니면 심판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은 중요하다. 질문을 통해 얻은 신념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폭력과 차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더 나아가 극한 환경 속에서도 도덕심을 지킬 것인지 생존을 위해 비굴한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장 착하고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라는 수용소 생존자의 말처럼 정의를 추구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는 가장 먼저 희생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윤리적 신념을 발판 삼아 결국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순옥 (혜움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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