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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6>앞길을 밝혀준 청계천의 헌책들
  • 안산신문
  • 승인 2021.04.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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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나와 청계천을 다니면서 어렵사리 구한 책 가운데 아직도 가지고 있는 책은 ‘fishes of the sea(바다의 물고기)’이다. 지금까지 필자의 책장을 잘 지키고 있다.

   “지하철 동대문역 인근에 위치한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서울의 대표적인 책방 거리다. 처음엔 노점식으로 운영되던 헌책방들이 평화시장에 모여들면서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상권이 형성됐다. 특히 책이나 참고서를 구하기 어렵던 시절 헌책방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한창 전성기를 맞이했던 1970년대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는 200여 개의 책방이 성업했고, 하루 평균 2만여 명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20여 곳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의 글 ‘위기의 헌책방② 200곳 넘던 책방골목, 20곳만 듬성듬성…"손님 없는 날도 많아"’에서 인용 -

   앞길을 밝혀준 청계천의 헌책들

   고교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많은 학생이 청계천을 찾았다. 대부분 사전과 참고서를 사기 위해서다. 당시 학생들에게 베스트셀러였던 ‘기초영문법’, ‘성문 종합영어’, ‘공통수학의 정석’ 등은 보통 헌책방에서 구매해서 공부하였다. 무엇보다 새 책을 살 여유는 없었다. 책이 많은 청계천 책방에서는 잘 하면 새 책같이 깨끗한 중고서적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모처럼 서울 시내는 나오는 재미도 쏠쏠하고, 관광지처럼 붐비는 거리도 학생들에겐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필자도 같았고, 이렇게 시작된 청계천 방문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할 일 없어 심심할 때도 갔고, 싼 문고판 소설을 구하러 가기도 했다.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후 삼수를 하고, 건국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하였다. 생물학이 적성에 맞아서라기보다는 야외에서 활동이 많을 것 같은 과를 고르다 보니 그리 정하게 되었다.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고, 삼 년간의 군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휴가를 나오면 헌책방을 찾곤 했다. 군 생활 후반기 1년 이상을 서울에서 파견 근무를 하였는데 이때는 외출하면 이곳을 들렀으니 더 자주 방문했다. 유일한 도서관이자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입대를 가면서 3년 동안 전역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결정만 하여도 큰 성과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고민을 하였었다.
   결론적으로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가장 우선한 것은 현재 생물학과를 계속 다니면서 한 분야를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두 번째는 필자가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가이고, 마지막으로 군에 있는 동안 어떤 준비해야 할 것인가였다. 파견 나오기 직전에 이왕 입학한 학과이니 운명으로 생각하고, 생물학 분야에서 한 분야를 선택하지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이어서는 생물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실험실보다 야외활동이 많은 분야를 찾았는데 결론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시간만 나면 도랑에서 물고기 잡던 기억과 동네 형들과 간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 그리고 가족들이 야유회를 간 작은 무인도가 생각났다. “그래 해양생물학이다.” “그러면 청계천 책방골목에서 해양 관련 책을 구하러 가야지.”라며 신이 났었다. 먼저 여러 서점을 뒤져 두 권의 책을 샀는데 한 권은 ‘일반해양학’인데 이 책은 유명 해양학자인 리처드 데이비스 주니어(Richard A. Davis Jr)가 저술한 ‘Principles of Oceanography’의 번역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서울대학교 해양학과 박용안 교수와 다른 두 교수가 번역한 책이었다. 박 교수님은 나중에 은사가 되었다. 다른 한 권은 ‘해양생물학(Marine Biology)’ 원서였다. 이 두 권을 통해서 이제 해양생물학을 전공하면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바다에서 생물을 연구하려면 당연히 물속에 들어가야 하니 스쿠버다이빙을 해야 한다는 데까지 추론을 해나갔다. 이 판단은 필자의 일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중요한 사항임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책 ‘신념의 마력’은 가장 많이 읽힌 일종의 자기개발서 같은 책이지만 내용이 평이하고 길이도 길지 않아 읽기가 쉽다. 필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소개한 책으로 청계천에서 산 책은 누굴 빌려주곤 되돌려 받지 못했다. (옛날 물건 yetnal.co.kr의 사진을 인용하였음)

   물론 해양에 관한 책만 산 것은 아니었다. 미술책을 구하기도 하고 소설책도 사서 읽었다. 그러던 중 ‘신념의 마력(클라우드 M. 브리스톨 짓고, 최영조 번역 정음사 발간)’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우연히. 이 책 또한 필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서 주 하나가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긍정적인 희망을 품으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가정환경이 어렵고 특출한 능력도 갖추지 않은 힘겨운 상황에서 멘토도 없이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 너무 힘들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방법을 일깨워주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는 이유와 남에게 자신 있게 보이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 법은 필자가 지금까지 필자의 행동지침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걷는 연습도 하였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어색하지 않은 웃음을 짓는 표정도 지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웃음도 자연스러워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보다 낙천적으로 태도와 자주 편하게 웃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이젠 몸에 배어있어서 더 연습하지 않는다. 이 책의 소개서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이 책은 특히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는 사람에게는 진리와 광명을 심어주는 비법서와 같다. 긍정적인 사고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재계는 물론 사회에 첫발을 딛는 사람뿐만 아니라, 교사, 강연자, 경영 컨설팅, 학생, 취업 준비생, 일반사원과 중간관리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만 권의 헌책 더미에서 필자의 손에 어떻게 잡혔는지 그 자체가 행운이었다.
   지금의 중고서점에 가면 책의 가치를 잘 알아 딱 그만큼 이상의 금액이 적혀있는데 당시에는 일부 책을 제외하고는 주인의 컨디션이나 그날 매출 등 상황에 따라 크게 바뀌었다. 여러 권을 사면 한 권 정도는 끼워주기도 하고 어떤 책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다음에 와서 갚으라며 외상도 주었다. 주소를 남기거나 다른 귀중품 맡기는 일 없이. 그러다 보니 자동으로 단골집도 만들어졌다. 200여 개의 점포 중에서 두 곳의 단골 책방이 있었다. 찾고 싶은 책이 있으면 미리 주문하고 돌아가면 전 책방에 수소문하여 찾아주기도 했다. 다들 못살아서 그랬는지 인정 많았던 낭만주의 시절이 그립다. 청계천 헌책방들과 책방지기가 인생 멘토였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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