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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8>바닷속을 다니다 영웅을 만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5.1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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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토의 저술한 ‘침묵의 세계(The Silent World)’는 1953년 처음 프랑스어로 출판된 이후 많은 판형과 다양한 언어로 출판되었으며, 해양도서로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필자는 네 종류의 영문판을 소장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골 대통령보다도 더 프랑스인들이 나라의 자랑으로 여겼던 세계적인 영웅이었다. 그는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발명하였을 뿐 아니라 수많은 해저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구적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서 다큐 소설 “The Silent World”는 고전의 지위에 올라 있는 저술이다. 해저 세계를 다룬 논픽션이 고전으로 취급되고 있는 예는 세계에서 이 책이 유일한 경우이다. “The Silent World”는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가 쿠스토와 합작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역사에 남았다. 그는 바다를 이해하고 난 뒤부터 선구적으로 자연 보호주의자가 되어 이 정신을 이끌어간 사람이다.” - 김인영의 글 ‘『더 싸일렌트 월드』를 디지털 판으로 올리면서’에서 인용 -
 
   바닷속을 다니다 영웅을 만나다.


   헌책방에서 산 ‘일반해양학’과 해양생물학(Marine Biology) 원서를 읽으면서 생물학과에 계속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였다. 그러면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한다면 전역을 하고서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할지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두 책을 보면서 배를 타고 다니며 연구를 하는 것보다 바다 물속에 직접 들어가 연구하는 것이 훨씬 흥미진진하게 다가왔고 체질에도 맞을 것 같았다. 바다에 적응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다. 소위 워터맨쉽(watermanship)이라고 하는 것인데 수중환경을 잘 알고, 적응을 잘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한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수영장에서는 헤엄을 잘 쳐도 자연에 나오면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어떤 이는 강이나 호수는 괜찮아도 바다는 두렵다고 한다. 다행이도 필자는 물에 대한 공포심이 없었다. 여섯 살 무렵 여름에 동네 형들을 따라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물웅덩이에 갔었다. 바다와 개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나는 곳으로 꽤 깊었다. 다들 그곳에 겁 없이 뛰어들어 놀았다. 처음인 필자가 뛰어들기를 망설이자 형 중의 한 명이 뒤에서 발로 차 밀어 넣었다. 깊이가 한 길이 넘어 물도 먹고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형들이 꺼내주었다. 이것을 반복하자 나중에 개헤엄을 터득(?)하여 혼자 즐겼다. 그만큼 물이 좋았었다.
   그러면서 몇 년 후엔 어떤 물에도 자신감을 가질 정도가 되었다. 친척들과 놀러 간 무인도에선 형들이 건너편 섬까지 수영을 해서 갔다 오는 모습을 보곤 조금 더 크면 해보아야지 했다. 이후 모잽이헤엄과 필자 나름대로 영법을 몸에 익혔다. 물론 그 영법이 너무나 엉터리 영법이라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팔은 자유형 비슷하게 하고 다리는 평형(개구리헤엄)을 하였으니. 신기한 것은 별로 지치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속도를 낼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괴상한 유영법이라는 것을 알기 한 해 전 동네 친구들과 강릉 경포대로 캠핑을 갔었다. 이곳에 있는 십리바위까지 도전하겠다고 큰소리치곤 안전을 생각지도 않고 자신만의 영법으로 다녀와서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오리바위와 십리바위 사이 수심에 깊은 곳을 지나면서 갑자기 수온이 떨어진 것을 느끼며 살짝 겁을 먹긴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은 만나면 자랑을 한다.
   1979년 유월 말에 제대한 직후 신문에 잠수교육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광화문 근처 무교동의 ‘한국잠수협회’를 찾아갔다. 화폐 가치로 따지면 당시 교육비나 장비 가격이 지금보다 두 배는 비쌀 것이다. 공부하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는 핑계로 지에서 받은 돈을 다 쏟아부어 훈련비를 마련했다. 집안 사정이 일시 좋아졌던 터라 가능했던 일이지만 집에는 알리지 않고 일 년에 걸쳐 스쿠버다이빙 강사과정을 뺀 전 과정을 마쳤다. 물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무거운 공기통을 매고 일반적으로 ‘비씨’라고 하는 부력조절기(BCD, Buoyancy Control Device)도 없이 가평과 청평 등에서 한강 도강을 여러 번 했는데 항상 선두였다. 바다에서도 겁이 없었고 온종일 물속에 있어도 즐거웠다. 조금 익숙해지자 바닷속에 생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낯선 생물들의 이름을 익혀 나갔지만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어느 날 종로2가 초입에 있었던 종로서적에서 일본 호이쿠사(保育社)에서 발간한 책인 원색해안생물도감(原色海岸生物圖鑑)을 우연히 발견하곤 뛸 듯이 기뻐했다. 종로서적은 전국 최대의 서점으로 늘 사람들이 북적였다. 외국 서적 코너에 이 도감이 있었던 것이었다. 언제나 신줏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녔다. 수중에서 만난 생물들과 그림 맞추기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으스대며 “이건 태충동 물이라고 하는데 식물처럼 보이지만 동물입니다.”라 하곤 하였다. 마치 유명 해양생물학자인 것처럼.

국내 최초의 국문 다이빙 교본인 것으로 추정된다. 1971년 (사)한국수중개발기술협회가 발간한 것이다. 이 책도 아끼는 소장품 중에 하나다..

그러던 어느 날 ‘쿠스토’라는 프랑스 해양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보를 모아보니 해군 장교 출신으로 최초로 현대식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발명한 ‘쟈끄 이브 꾸스또( Jacques-Yves Cousteau)였다. 해양학자이자 탐험가로서 전용 탐사선인 캅립소(Calypso) 호를 타고 다녔으며, 전 세계 바닷속을 탐사하면 저술 활동도 하고,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든 다이빙계 최고의 인사였다. 다이빙 관련 최고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침묵의 세계(The Silent World)’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 책은 다이버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교과서였다. 그래서 그는 다이버이자 선장이었으며, 저술가, 항해사, 발명자, 혁신가, 영화제작자로도 불렀으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해양인 이였다. 1997년 그가 작고했을 때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인사를 그를 애도했다. 그가 선장 또는 함장으로 불렸던 것은 그와 40여 년을 함께 한 칼립소 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쿠스토(프랑스어 발음으로는 ‘꾸스또’이나 국내 수중계에서는 영어식 발음인 ‘쿠스토’로 널리 부르고 있음)’를 아는 순간부터 그는 항상 필자의 영웅이었으며, 그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해양학에 즐거이 입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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