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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9>어느 날 헌책의 가치를 발견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5.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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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최초의 현대식 도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연도는 단기 4291년으로 적혀있으니 1948년이다.

“책을 살 때는 먼 훗날에 발생할 가치를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휴지 취급을 받을 수도 있음을 알고도 수집을 한다. 직업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 또는 책방이 좋아 찾아가다 보니 책을 수집하고 소중히 간직한다. 그러니까 어느 날 버려지거나 도서관으로 옮겨질 운명인 것을 잘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 이런 책 중에는 가치가 있는 책으로 판명되어 비싼 값이 팔리거나 다른 수집가의 서고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그러니까 책 수집도 일종의 자기만족이고 중독성이 강한 수집벽일지 모른다,”
 
   어느 날 헌책의 가치를 발견하다.

   청계천을 찾아갈 때면 일종의 최면 상태가 된다. 마음이 들떠 가는 길이 가벼워지고 책들을 만나는 순간은 마치 보물섬을 찾아낸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모여있는 책들은 언젠가는 누구의 소중 책이었음을 잘 안다. 책방 입구부터 가득 쌓여 있는 책더미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좋은 책 나온 것 있나요?” 의례적인 질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해양 관련 책이 드물다 보니 주로 동식물 도감을 추천을 받았지만, 온갖 책을 보며 즐기고 싶었다. 온종일 머물면 참 좋았겠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재빨리 있는 책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였다. 힐끔 보더라도 그곳에 놓여 있는 책의 종류와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는 일이 자연 익숙해졌다. 지금도 서점이 아니더라도 책장이 있는 곳을 가면 이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잘 꺼내진 않는다. 책을 드는 순간 사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데 충동구매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책방을 찾아 외출한 목적도 잊게 되거나 지출을 다 해버리곤 정작 살 책을 못 구하고 돌아온 일도 있었다.
   사전에서는 ‘중고 서적(中古 書籍)’을 “이미 사용했거나 오래된 책”이라고 하고, 헌책은 “이미 사용한 책”이라고 하니 큰 의미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사용하지 않았으나 오래된 책을 ‘중고 서적’이라곤 해도 ‘헌책’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영어로도 의미의 구분 없이 ‘유스드 북(used book)’과 ‘세컨핸드 북(secondhand book)’을 헌책이나 중고 서적이라고 번역한다. 후자는 새것은 아니면서 과거 누군가가 사용했던 책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즉 다른 사람이 강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헌책방 또는 중고 서점이라고 할 때는 전자 주로 북스토어(bookstore)를 그리고 후자에는 북숍(bookshop)을 붙여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중고 서적을 가치별로 종류별로 구분해서 파는 경우가 드문데 희귀본이나 고서와 전문도서를 구분하여 판매하는 서점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전문화된 오래된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오래되었다고 다 희귀한 것도 아니고, 새 책이었으나 시간이 장기간 지나다 보면 바래고 낡을 수 있다. 최근엔 동네 책방이나 대형 중고 서점이 있으나 대부분 새 책 같은 지난 책들만 있어 예전처럼 보물찾기하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전 연재에서 언급한 것처럼 필자의 길잡이가 된 책인 ‘일반해양학’이나 서구에서 대중서로도 잘 알려진 랄프 부쉬바움(Ralph Buchsbaum)가 1930년대 저술한 ‘Animals Without Backbones. An Introduction to the Invertebrates’를 최기철 교수가 번역한 ‘무척추동물학’이라는 책은 필자에겐 보물과 다름없었다. 특히 최 교수의 책은 해양무척추동물 공부에 최고의 교과서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번의 이사와 관리를 잘 못 한 탓에 몇 년 전에 두 권 다 분실된 것을 지난해에 알게 되었다. 아쉬움에 아직도 그 책의 행방을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새로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나 전국의 헌책방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다니지만 아직 구하지 못했다. 이 ‘무척추동물학’의 출판 연대도 195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 중에는 1949년에 수문관(修文館)에서 출판된 ‘학생 동식물도보(學生 動植物圖譜)’가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최기철 교수가 집필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모르긴 해도 동물학자로서 두 책 사이에 간격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서다. 도보는 인쇄 상태나 종이나 글자체 그리고 편집이 조잡해 보이나 해방 직후인 점을 참작하면 그 어려운 시절에도 동식물에 대해 만들었다는 점을 가치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기 4292년(1949년)에 출간된 ‘학생 동식물도보’의 삽화이며 손 그림인데 정밀하지는 않으나 어떤 종을 나타낸 것인지 알 수 있다.

 앞의 동식물도보의 한 페이지를 보니 극피동물의 그림과 함께 이름이 적혀있는데 현재에는 ‘삼천발이’로 불리는 종을 ‘수세미불가사리’로 명명해 놓았다. 그리고 생소한 이름인 ‘갓거리’라는 불가사리도 있었는데 우리말 이름의 명명 방식으로 볼 때 한 지방에서 불리었던 이름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동물분류학에서 우리말 이름을 확정하고 정리할 때 꼭 참고해야 할 책이다. 우리나라 동물분류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전 서울대학교 김훈수 교수는 “동물들의 순우리말 이름은 조선 후기에 실학의 도입으로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동물들의 우리말에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옛 책을 통해 우리말을 추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도보보다 일 년 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장향두(저자)’의 ‘학생 조선식물도보(學生 朝鮮植物圖譜)’는 어쩌면 한국 최초의 동식물 도감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귀한 책이지 않겠는가?
   이 두 권의 책의 옛 도감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다. 어디서 사들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청계천 중고 서적 거리, 인사동 고서점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등 세 곳 중의 한 곳인 것은 분명하다. 구매한 시기는 1970년대 후반이나 1980년대 초반이다. 그때는 그랬다. 가끔 귀한 서적을 헐값에 구하는 행운을. 물론 우연히 발견한 것이고 이들 책을 목표로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책장을 정리하면서 다시 발굴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잊고 있었던 책을 다시 만났다. 엄청 기뻤었다. 지금 생각하니 산 곳이나 이유, 가격 그리고 그때 감정 등을 잘 적어 놓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필자가 1990년대 초에 연체동물의 이름을 총정리할 때도 필자의 서고에 있는지도 그 내용도 몰라 이 책을 참고하지 못했다. 비록 ‘서지학(書誌學, bibliography 또는 bibliology: 책을 대상으로 하여 그 형태와 재료, 용도, 내용, 변천 등을 과학적이며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이제부터 책을 찾아낸 과정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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