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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
  • 안산신문
  • 승인 2021.06.0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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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한겨레출판

-상처받은 당신에게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글 잘 쓰는 이름난 작가나 시인들은 어떤지 몰라도 이게 내 모습이다. 늘 궁금했다. 이걸 왜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마약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바로 내 안에 있는 '발설의 욕구'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발설의 욕구는 내 안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그런데 대체 내게 그 무슨 특별하고도 크나큰 상처가 있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대단한 상처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다 문득 인생이 어쩌면 돌멩이가 구르는 일, 또는 바위가 한자리에 서 있는 일쯤에 비유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르는 돌의 매끈함도 알고 보면 오랜 세월 구르는 동안 쌓인 상처의 총합이 아니던가. 한평생 제자리에 박혀 있는 듯한 바위에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바람이, 뜨거운 햇살이, 비와 눈이, 잠시 앉았던 산새의 발톱이, 기어가던 벌레가 할퀸 수많은 상처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세상 만물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서 이미 수많은 상처를 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는 것도 예외는 아니리라. 상처가 있으면 본능적으로 치료를 꿈꾸는 게 인지상정. 상처의 숫자만큼이나 치료의 방법 또한 다양하겠으나, 그 수많은 상처 치료의 방법 중 글쓰기가 단연 좋은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데에 공감한다. 그런데 상처는 나와 상관없는 먼 누군가로부터 받는 게 아니다. 대부분 가족이나 연인 등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다. 그렇기에 사랑과 상처는 대부분 공존한다. 각자에 따라 그 비율과 크기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누구나 알게 모르게 가슴속에 사랑과 상처를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다. 애증(愛憎)이란 말이 괜히 생겨났겠는가. ‘애무를 하다가도 상처를 입을 수 있’(p139)는 법.

 이 책은 글쓰기가 가진 상처 치유의 힘과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 안내서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p20)이라고 말한다. 낙서하기, 일기 쓰기, 자신에게 편지 쓰기, 자문자답 형태의 셀프인터뷰 등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숨어 있던 마음속 상처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그것들이 발설됨으로써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상처 하나 없는 존재가 있을까? 굳이 ‘치유하는’이라는 문구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나는 모든 글에는 어떤 형태로든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게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궁극적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남의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직접 글을 써 보면 더 좋다. 내 경험상으로도 읽을 때보다 쓸 때 더 큰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평안할 때보다 무언가 결핍의 감정을 느낄 때 글이 잘 써지는 것,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노래한 글보다 오히려 가난하고 소박함을 노래한 글에서 감동을 얻는 것 모두가 글이 가진 치유의 속성 때문이겠다.

 ‘잘 쓴 글’과 ‘좋은 글’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교와 태도의 차이일 수 있겠다. 잘 쓴 글은 기술적으로 훌륭한 글이고, 좋은 글은 진심 어린 태도가 느껴지는 글 아니겠느냐.”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말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물론 잘 쓰면 좋겠지만, 그에 앞서 먼저 좋은 글을 써 보자.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수련한 작가만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나 자신에게 진심 어린 글을 써 보는 것. 그게 나 자신을 치료한다고 하지 않는가.
 상처받은 당신, 구급함에서 연고를 꺼내 바르듯 지금 당장 일기장을 펴고, 편지지를 꺼내고,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시라,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가. 그땐 핸드폰에도 메모장 기능이 있다는 걸 기억 하시길. 

박청환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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