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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11>수필의 시대를 관통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6.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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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외국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이 출판되기 시작한 때였으며 새로운 읽을거리에 목말랐던 한국인들에게 지식의 선물이 되었고, 새로운 출판 방식에 대해 눈뜰 때였다.

『“홀로 있는 사람은 불쌍하다!” 이렇게 흔히들 말합니다. 그러나 학문에 힘쓰는 은둔자는 “불쌍한 사람은 홀로 있지도 못한, 아니 혼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대꾸합니다. 우리에게 모임이 필요하고, 또 고독도 있어야 합니다. 마치 여름과 겨울, 낮과 밤, 그리고 운동과 휴식이 있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 필립 길버트 해머튼의 책 ‘젊은 지성인 위하여(김인숙 옮김)’에서 인용 -
 
 수필의 시대를 관통하다.

   무협지를 열심히 읽던 시절에도 소설을 찾아 읽었다. 주로 단편 소설이었는데 아마 ‘한국 단편소설 전집’ 등의 이름으로 여러 권을 묶은 것에 있는 작품들이었다. 빌려 읽었다. 이효석, 김동인, 계용묵 등의 작가가 기억나고 ‘메밀꽃 필 무렵’은 몇 번 다시 읽을 정도였다. 그 시대에는 전집류들이 많았다. 집마다 진열장에 한두 세트가 있을 정도였다. 문학작품도 있었지만, 사전류와 역사물 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많은 학생이 일종의 아르바이트로 이 전집류를 판매하였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광화문 한 사무실에 가서 계약을 맺었는데 전체 정가에 40% 정도를 수당으로 주니 학생들에게 꽤 짭짤한 금액이었다. 경제가 좋아지던 시절이긴 하나 다 살기 어려울 때여서 전집류를 사줄 만한 집이 그리 많지 않아 방문 판매도 쉽지 않았다. 주변머리가 없는 필자에겐 더 그랬다. 그러니 친척 집과 여유가 있는 친구 집에 권할 수밖에 없었다. 두 친척과 직장을 다니는 친구 누나가 전집을 한 질씩 사주었다. 수당은 거의 일 년간 용돈이 되었다. 서적 외판은 출판사 입장에서 새로운 판매전략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이바지(?)한 분야다. 물론 어떤 판매사원이라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았고, 출판사도 이점을 잘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단편 소설은 재미도 있었지만 단번에 읽어 내릴 수가 있어 틈을 내어 읽었다. 때론 이들 소설 속에 빠져들어 감동하기도 하여 한동안 멍하게 있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려웠던 시절의 서글프고 안타까운 서민들이 이야기가 많아 호탕하거나 희망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럴 때 만난 책이 김형석 교수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였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사 온 것인데 흥미뿐만 아니라 희망적인 메시지가 많았고 무엇보다 모든 글이 짧아서 좋았다. 특히 미래와 사랑에 대해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을 주어서 좋았다. 한참 후에 안 일이지만 이 책은 한국 에세이의 역사를 새로 쓴 기록적 베스트셀러였다. 1960년대의 척박한 사회환경 속에서도 60만 부나 팔렸다고 하니 과히 경이로운 기록이다. “과거에 젊은이였던 이들과 지금의 젊은이들을 향해 애정을 담아 건네는 인생 이야기! 당면한 시대적 과제에 대해 철학자로서의 답변에서부터 인생의 의미에 대한 성찰, 죽음과 영원에 대한 묵직한 사유까지, 서정적이고 단아한 산문의 행복론이자 인생론”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 책을 한동안 책장에 한 곳에 소중히 모셔두었고, 자주 꺼내 필요한 단락들을 읽었었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저서 두 권도 사서 읽고 잘 간직하였으나 어쩐 일인지 필자의 책 창고에서는 더는 찾을 수가 없다. 어렴풋이 후배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꼭 읽어 보아야 해”하면서 읽기를 권한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그들에게 빌려준 것 같다.

1966년에 나온 박목월의 ‘밤에 쓴 인생론’(왼쪽)은 세로쓰기로 쓰였고, 1979년에 출판된 해머튼의 ‘젊은 지성인을 위하여’(오른쪽)는 가로쓰기로 되어있는데 필자가 찾은 1970년대 책 중에 처음 시도된 책이다.


   수필(隨筆)은 보통 ‘에세이’라고도 하는데 사전에서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로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뉜다.’라고 정의한다. 유사한 용어로 수상록(隨想錄)이 있는데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을 말한다. 그러니 수상록을 수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경수필은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소재로 가볍게 쓴 수필. 감성적ㆍ주관적ㆍ개인적ㆍ정서적 특성을 보이는 신변잡기’을 말하는데 미셀러니(miscellany)라고도 한다. 그리고 중수필은 미셀러니와 대비하여 에세이(essay)라고 하고 ‘주로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수필이나 비개성적인 것으로, 비평적 수필ㆍ과학적 수필 따위’라고 하였다. 어떤 이는 전자를 ‘몽테뉴적 수필’이라고 하고 후자를 ‘베이컨적 수필’로 부른다. 프랑스 철학자인 ‘미셜 드 몽테뉴’의 ‘수상록’과 영국의 철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수필집’을 흔히 수필의 고전이라고 한다.

어쨌든 김형석 교수의 책 이후에 수필 읽기에 몰두하였고 주변을 둘러보니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거리의 신문 가판대나 서점에도 1970년에 탄생한 ‘샘터’형 잡지가 많았는데 다 수필 같은 글이 가득하였다. 수필만을 실은 잡지도 있었다. 이런 잡지에서는 누구나 수필가가 될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작가를 꿈꾸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랬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본격적으로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대접받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닌가 한다. 1970년대 후반에는 서구와 일본 등지에서 인기가 있었던 샘터 크기의 잡지인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가 나와 인기를 얻었다. 샘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건강과 자연과 여러 나라의 토픽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지구상의 다른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전 세계 잡지들 가운데 오·탈자가 가장 적은 잡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아직도 필자의 서재의 전문서적이 모여있는 곳에는 두 권이 남아있다. 둘 다 해양과 관련된 특집이 실렸던 ‘호’다. 이 국제적인 잡지는 1922년에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며, 한국어판은 아쉽게도 2009년에 발간을 멈추었다.
   이 시절에 구매한 수필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은 1996년에 삼중당(三中堂)에서 출판된 박목월의 ‘밤에 쓴 인생론’과 1970년에 현암사(玄岩社)에서 나온 윤태림의 ‘의식구조 상으로 본 한국인(韓國人)’이다. 이 두 권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들이었다. 또 문학작품이 아닌 외국 서적이 많이 시중에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찾아 읽었던 책 중에는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금종우 옮김 / 서문문고)’, ‘존 K 갈브레이드의 불확실성의 시대(김영선 옮김 / 청조사)’, 필립 길버트 해머튼의 ‘젊은 지성인을 위하여(김인숙 옮김 / 종로서적)’,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서의 도피 / 사랑의 예술 (고영복 옮김 / 동서문화사)’ 등이 지금도 서재에 남아있다. 이들 책의 공통점은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혹적으로 보이는 제목과 내용을 가지고 있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군사독재 시대였던 당시에 공공연하게 출판할 수 있는 주제로는 이 정도까지였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서적들이 ‘가로쓰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위 책들 가운데 1979년 나온 책 ‘젊은 지성인을 위하여’가 유일하니 이 방식은 1970년대에 시작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자 혁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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