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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안산신문
  • 승인 2021.07.2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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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말로, 홍신문화사

소설은 충격적인 암살 장면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 1927년 3월 21일 자정이 지난 시간이다. 첸은 무기중개상을 살해하고 권총 삼백정에 대한 매매계약서를 탈취하기 위하여 호텔방에 잠입한다. 첸은 암살자로서 세상과 단절된 고독감속에서 번민하는 과격한 테러리스트이다.
  정부군으로 위장한 기요와 카토프 일행은 그날 밤 첸이 가져온 무기 매매계약서를 이용하여 밀수선에 접근하여 혁명에 필요한 모젤권총 수백 정을 강탈한다. 그들은 그 총들을 화물차에 싣고 새벽 상하이 전역을 돌며 자신들이 조직한 코뮤니스트 거점들에 전달한다. 대대적인 파업이 진행되고 있고 경찰서 습격으로 시작되는 폭동 개시 시간은 낮 12시이다. 치열하게 전개된 그날의 폭동은 코뮤니스트들의 승리로 진행되었다. 상하이 모든 경찰서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그 무기로 무장한 그들은 봉기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시 정부와 병기창, 철도 정거장을 모두 장악하였다. 
  그러나 기요의 동지들은 처음부터 이 거사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국공합작으로 북방군벌 토벌에 협력해 오던 장제스 군대의 방향전환 때문이다. 코뮤니스트들을 이용하여 상하이를 장악한 장제스는 코뮤니스트들이 확보한 무기들을 수거하고 그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거기에 타협하라는 한커우 코뮤니스트 본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장제스에 대항하는 소수의 코뮤니스트 들이 있다. 그들이 기요와 카토프, 첸, 에멜리크의 동지들이다.
  메이는 독일인 여의사로 기요의 아내이다. 두 사람은 생사를 함께하는 혁명동지로서 맺어져 있다. 바로 내일 목숨을 건 거사를 앞둔 메이는 사랑과 상관없는 욕망으로 다른 남자와 잤노라고 기요에게 고백한다. 그건 메이의 자유이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기요는 말할 수 없는 굴욕적인 고통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기요는 절박한 혁명의 목숨을 건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그 실존적인 상황 앞에서 마침내 깨닫는다. 나와 그녀는 일종의 절대적인 긍정이다. 남들이라면 다만 우리들의 행적만으로 우리를 파악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서로가 무엇을 했건 오로지 그녀이기 때문에, 혹은 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목숨을 건 투쟁현장에 동행하려는 메이를 거절했던 기요는 다시 집으로 가서 말없이 따라나서는 메이와 함께 나온다.
  듬직한 체구의 러시아인 카토프는 직업혁명가이다. 그는 기요와 함께 상하이 코뮤니스트 조직을 만들고 무기훈련 등 혁명교육을 수행한다. 장제스 군대에 대항하여 동지들과 코뮤니스트 지부를 끝까지 사수하다 포로가 되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마지막 순간에 동지들은 차례로 감옥에서 끌려나가 시뻘겋게 타오르는 기차 화통에 들어가 타죽는 형을 받는다. 죽음의 차례를 기다리며 동지들이 공포에 시달릴 때 카토프는 자살용으로 소지한 청산가리를 함께한 두 동지에게 양보한다. 그리고 자신은 불에 타죽는 고통을 받아들인다. 이때 청산가리를 양보 받은 동지는 카토프의 손을 잡고 그의 우정에 감사의 인사를 한다.
  레코드 가게를 하는 벨기에 출신 에멜리크에게는 아내와 병든 아들이 있다. 그래서 그는 동지들처럼 목숨을 내건 투쟁에 나서지 못한다. 첸이 장제스를 암살하기 위하여 폭탄을 소지하고 두 동지와 함께 찾아 왔을 때 에멜리크는 그들을 거절했다. 세 시간 만 있게 해 달라는 동지를 돌려보낸 그는 심한 부끄러움과 자괴감으로 괴로워한다. 
  앙드레 말로는 삶의 고통에 허덕이는 인간도 죽음을 통해서 그 존엄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그가 누구일지라도 더 높은 가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아니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을 뜨거운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27년의 상하이는 서구 열강들의 조계지와, 제국주의의 이익과 탐욕을 쫓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인종들로 북적거렸다. 앙드레 말로도 1923년에서 1926년 까지 인도차이나 지역과 중국에서 국민당 혁명을 원조하였고 장제스의 북벌통일전에 참여하였다. 그 후 1933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이 소설로 말로는 콩쿠르 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코뮤니즘 혁명을 이야기한 앙드레 말로도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계기로 코뮤니스트와 결별하고 있다. 우리는 다만 이 소설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죽는 인간의 비장한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1927년 무렵은 조선이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던 시기이다. 우리와 가까운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목격한 서른두살의 프랑스 청년이 쓴 소설 “인간의 조건”은 우울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장범<수필가.안산문인협회 이사.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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