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열린글밭 칼럼 서평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
  • 안산신문
  • 승인 2021.08.11 16:06
  • 댓글 0
(에두아르트 뫼리케, 민음사)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 적당한 두께, 파란 하늘에 연둣빛 잎사귀와 주황색 열매가 그려있는 표지. 무거운 한여름 더위에 그리워지는 가벼운 산들바람처럼 매력적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지인이 사다 준 선물이었다. 타인의 손에 이끌려 간 여행지 중에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은 기분이 이럴까.
  소설? 수필? 논픽션? 주인공은 읽기 전이라도 제목에서 쉽게 읽찾을 수 있었지만, 글의 갈래는 책을 읽는 도중에도 알 수가 없었다. 찾아보니 노벨레(novelle)란다. ‘새로운 것’이라는 그 어원처럼, 신기하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예술적 구성으로 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로 재현한 비교적 짧은 산문 또는 운문 작품을 일컫는다. 뫼리케는 1856년 ‘모차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이 작품을 써냈다. 스무 살에 가족과 오페라 《돈 조반니》를 감상한 뫼리케는 그날을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며칠 뒤에 동생 아우구스트가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돈 조반니》는 그에게 가장 행복한 음악이자 죽음을 연상시키는 슬픈 추억으로 남게 되었고, 후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1787년 9월 14일, 31살의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미완성 초고를 들고 프라하로 향한다. 체코 국경 근처의 풍경에 매혹된 그는, 잠시 산책하던 중 ‘난 도대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백작의 정원에 심긴 광귤나무의 열매를 무심코 따게 되고, 그의 정체를 파악한 백작 부부에게 초대된다. 그날은 백작의 조카딸 오이게니의 약혼식이 열렸다. 파티에서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 중에서 최근 완성한 피날레 장면을 연주한다.
  영화 《아마데우스》 속에서 모차르트는 범접하기 힘든 천재에 오만하고 방탕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우리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살리에리에 이입하여 모차르트를 기피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 속의 모차르트는 영화 속의 아마데우스와는 너무 대비되는 평범한 사람이다. 일에 지치고, 사람들의 기대에 힘겨워하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가 위대한 천재여도 우리에게 동병상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온갖 종류와 갖가지 빛깔의 걱정거리, 거기에 후회의 감정이 한데 섞여 쓰디쓴 양념이 되더니 결국 모든 기쁨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이런 슬픔 또한 승화하고 정화하여, 마치 깊은 샘으로 녹아들 듯 선율로 바꾸어 내고 수백 개의 황금의 관을 통해 솟아오르며 인간의 모든 고통과 행복을 쉼 없이 쏟아 냈음을 알고 있다.” (15쪽)
  모차르트가 이렇게 감정을 승화하여 아름다운 선율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백작가의 사람들처럼 그를 사랑하고, 그와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에 와 있던 창작욕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에게 다시 프라하로 출발할 힘을 주었다. 모차르트가 이 하루처럼 여생을 살았다면 아마도 조금은 더 평안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
  뫼리케는 목사와 문학 교사를 거쳐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 낭만주의 시인이 되었다. 민요풍의 시로 유명하지만 독일 민담이나 전설에 기반한 산문도 지었다. 그는 특별한 파란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고, 그의 작품들도 대부분 온화하고 소박한 내용들이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위대한 예술가의 하루를 과장 없이, 완성되어 가는 《돈 조반니》에 맞춰 담담하게 들려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숨겨진 격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에 끌렸고, 《돈 조반니》에 매혹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자아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한다. 무한한 어떤 것이 다가와 나를 어루만지며 가슴을 조이게 하고, 또 그 무한한 것이 내 가슴을 확장시키고 영혼을 강력하게 낚아채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완성된 예술에 대한 경외감에 휩싸이고, 신적인 경이로움을 맛보고, 그것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일종의 감격, 거의 자부심까지 갖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순수한 자부심이 아닐까?(75쪽)
  우리가 꿈꾸는 평온한 인생이란 무감한 인생이 아니다. 때로 눈물짓고 화내더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승화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승화의 왕도는 대체로 예술작품에 녹아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찾는다. 이제 책으로, 음악으로 모차르트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김현숙<혜윰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