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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뒤편에도 인생이 숨겨져 있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8.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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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 현대문학)

찌는 듯한 더위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더니 요 며칠 사이 부쩍 바람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갑자기 온 가을 기운이 새삼 신기하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껐다. 창문을 열어 놓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 읽기에 딱 좋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안규철의 <사물의 뒷모습>을 추천해본다.
 <사물의 뒷모습>은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으로 과부화된 현대인의 뇌를 식혀주기 좋은 책이다. 우리는 텍스트 보다 이미지가 더 많이 소비되고 주목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디어의 음성과 현란한 편집 기술은 재미는 있지만 재미 외에 남겨지는 것이 적다. 영상 매체에 중독되어 가고 있지만 볼수록 피로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끊기 어려워한다. 이러한 시대에 이미지와 사물을 텍스트로 기록한 에세이를 발견하는 것은 꽤 반가운 일이다.
 에세이 <사물의 뒷모습>을 쓴 작가 안규철은 조각을 전공한 미술가다. 7년 동안 중앙일보 <계간미술>에서 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인지 글솜씨가 눈여겨볼만 하다. 안규철은 아홉 차례의 개인전과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발표해왔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를 역임했다. <사물의 뒷모습>를 펴내기 이전에도 서구 현대미술의 체험을 기록한 <그림 없는 미술관>, 사물의 관한 이야기 <그 남자의 가방>, 테이블에 관한 드로잉과 생각을 묶은 <43 tables>을 비롯해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안규철 : 당신만을 위한 말> 등을 펴냈다.
 전작들과 같이 <사물의 뒷모습>은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통해 인생의 단면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준다. 차례를 보면 ‘식물의 시간’, ‘스무 개의 단어’, ‘예술가들에게 은혜를’, ‘마당 있는 집’으로 4개의 챕터로 나누어져있다. 각 챕터 마다 한 페이지에서 세 페이지 가량의 단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 안에는 작가가 살아가는 동안 느끼는 고민과 과정, 여러 아이디어, 엉뚱한 생각, 나아가 삶의 철학까지 담겨있다.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물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 난 것이 냉장고나 세탁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일 때,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제도 자체일 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p.48~49 겉과 속 중.

 고장 난 기계로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어느새 인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독자에게 성찰하는 시간도 갖게 한다.

 ‘그렇다면 나를 지배하는 관성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내 안에 들어앉은 타성과 편견의 바위들을 끌어내고, 익숙한 방향으로만 흐르려는 생각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힘이 나에게 있는가. p.60 관성 중.

 이 책은 쉽게 읽히는 글뿐만 아니라 글과 같이 그려진 삽화가 재밌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쭉 읽지 않아도 된다. 그 때 그 때 읽고 싶을 때, 시간 날 때 읽어도 괜찮다. 앞부분을 읽다가 중간이나 뒷부분을 읽어도 된다. 그만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부담은 없지만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다. 삶을 여러 해 경험하고 얻은 지혜와 통찰이 새겨져 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순간, 안규철의 <사물의 뒷모습>을 읽으며 가을을 기다려보면 어떨까.

김아름(극작가.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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