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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17>저서생물 분야와 운명적으로 만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8.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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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자산어보는 1977년 지식산업사에서 발간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어류도감을 집필한 정문기(鄭文基) 선생이 번역한 것이다.

   『자산의 해중어족(海中魚族)은 매우 풍부하지만, 그러나 그 이름이 알려진 것은 적다. 마땅히 박물학자(博物學者)들은 살펴보아야 할 곳이다. 나는 섬 사람들을 널리 만나 보았다. 그 목적은 어보(魚譜)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61600;&#61600;&#61600;&#61600;&#61600;&#61600; 이리하여 조사 연구한 자료를 차례로 엮었다. 이것을 ‘자산어보(玆山魚譜)’라고 불렀다. 그 부수적인 것으로는 바닷물새(海禽)와 해채(海菜)에까지 확장시켜, 훗날 사람들이 참고자료가 되게 하였다.』 - 정약전 짓고 정문기가 옮긴 책 ‘자산어보’에서 인용 -
 
   저서생물 분야와 운명적으로 만나다.

   전역한 직후 종로서적을 찾는 일이 잦아 졌다. 종로1가 종각 바로 옆 건물이었다. 당시에는 종로가 가장 번화가이기도 해서 자연 그쪽으로 나갈 일이 많았다. 또, 종로서적이 국내에서 가장 큰 서점이고 시설도 좋아 약속 장소로도 많이 애용되었다. 외국책을 판매하고 있어서 청계천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출입이 잦았다. 어느 날 외국책 코너 자연과학 책장에서 못 보던 ‘바닷물고기(fishes of the sea)’라는 이름을 가진 어류에 관한 책이 있었다. 제목이 눈에 크게 띄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가능하면 새 책을 사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깨고 몇 번을 오가며 책을 만져보곤 거금을 들여 구매했다. 도감은 대개 사진이나 세밀화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는 특징만을 간략하게 그림으로 나타내어 더 호감이 갔었다. 물론 대상 해역이 유럽의 북해와 지중해여서 우리 바다의 물고기를 찾아 맞추어 볼 수는 없었으나 ‘과(family)’별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 ‘과’는 ‘개과’나 ‘고양이과’ 동물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과’였다. 물고기들도 유사한 특성을 가진 종들끼리 묶어 다른 무리와 구분하는데 그중 한 단계가 과이다. 사무실 책장 어류 책 칸에는 그 책이 있어 보니 <1979. 7. 27 종로서적>이라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벌써 32년 전 일이다. 한동안 이 책을 바다에 갈 때마다 자랑삼아서 가지고 다녔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영화 ‘자산어보’도 정약전과 이 책이 이야기이다.
   휴교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물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그럴수록 해양생물 분야가 필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처럼 다가왔다. 한국잠수협회에서 다이빙을 배운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스쿠버다이빙팀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필자가 유일한 생물학과 학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다이버들은 이따금 “나중에 해양학자가 되겠네!”라는 말이 자주 했다. 필자도 그 말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분위기를 은근히 즐겼다. 그러면서 지내던 1980년 어느 날 인사동 통문관에서 원로 어류학자인 정문기 교수가 번역한 한글판 ‘자산어보’를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나 보기를 기다렸던 책이라 반가웠다. 교수의 다른 저서 ‘어류박물지’라는 책을 소유하고 있었던 터라 자산어보의 존재는 알았으나 자산어보의 출판연도가 나중이라 번역본의 존재 여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자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귀양살이한 다산 정역용의 형 정약전이 쓴 책이다. 동물분류학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작고한 전 서울대학교 김훈수 교수는 1814년에 낸 이 책이 형태를 제대로 기술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였더라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책이라고 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자주 대하고 읽었던 어류에 관한 책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어류 자체에는 왠지 학문적인 관심이 덜 갔다. 어류가 아닌 다른 동물을 공부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류가 큰 해양생물이고 다른 생물에 비해 이용가치가 월등한데도 어류에 대해 거리를 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다른 어떤 생물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인기있는 대상처럼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2학년 2학기에 해양생물학 수업이 있어 듣게 되었는데 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 해양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었다. 하루는 강사 연구실을 찾아가 해양생물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플랑크톤(plankton), 벤토스(benthos), 넥톤(nekton) 중 어느 분야 선택해보라고 하면서 해당 전문학자를 소개해 준다고 하였다. 플랑크톤은 분명 아는 단어인데 벤토스와 넥톤을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잘 아는 척하며 당당하게 벤토스라고 말했다. 위 세 용어는 생태학적인 용어로 플랑크톤은 부유생물이고, 벤토스는 저서생물(해저 바닥에 의지하여 사는 동식물로 기어 다니거나 굴착을 하고, 또는 기질에 고착해서 산다), 그리고 넥톤은 어류를 포함한 유영생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필자의 해양생물 연구 분야가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넥톤이라고 했었더라도 나중에 벤토스로 바꾸었을 것이지만 필자의 전공 분야를 마치 운명처럼 정하게 되었다.

무척추동물을 이해해야 해양생물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분류학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 비중이 절대적이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무척추동물 신종들이 다수 출현하고 있다.

   소개받은 벤토스 학자들이 있었던 해양연구소 분관은 지금의 서울 강남의 국기원 근처였는데 그곳에는 저서생물을 담당하는 세 명의 전문가가 있었다. 각각 전공하는 생물 분야가 달랐는데 절지동물(주로 갑각류), 환형동물(주로 갯지렁이류), 불가사리와 성게 등이 포함된 극피동물 분야였다. 분관으로 찾아간 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급료는 없는데도 할 수 있냐고 해서 그렇다고 대답하고 그때부터 매 방학에는 연구소에서 세 전문가를 도우며 보낼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하는 일은 바다 현장에서 채취된 원 표본이 들어있는 통이나 병이 들어오면 전문 분야로 크게 나누어 각 전문가에게 배당하고 나머지는 따로 보관을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소팅(sorting)’, 즉 ‘종류별로 나누기’라고 했다. 표본들은 썩지 않게 포르말린 용액이나 알코올 용액에 담겨 연구소로 온 것을 꺼내어 깨끗한 물로 씻은 후 동물 분류군별로 나누는 일인데 표본통을 열면 냄새가 지독하였다. 처음엔 마스크나 장갑도 끼지 않고 만졌다가 손의 표피가 벗겨졌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공부하게 되고 한 가지씩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즐거웠다.
   어류는 모두 척추동물이지만 저서동물들은 대부분 무척추동물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무척추동물에 관한 서적도 수집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수집한 책들 가운데 주제별로 보면 무척추동물에 관한 책이 가장 많다. 해양연구소에 일한 연구 시간은 거의 이들 저서생물과 무척추동물에 관련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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