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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18>동식물 도감의 중요성을 깨닫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9.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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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식물도감의 첫권은 그냥 ‘동물도감’이었다. 고려대학교의 조복성 교수가 엮은 것으로 나비류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희귀본이라 생각한다.

   『현미경 속에 펼쳐지는 신비스러운 생명체의 모습에 매혹되어서 휴식시간이면 대학 운동장 옆의 도랑을 뒤지고, 일요일에는 플랑크톤 넷트와 채집병을 들고 교외의 호수와 산간의 계류를 헤치면서 물속이라면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동안에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넓은 모래밭에서 조약돌을 주어 모우듯이 담수조류(淡水藻類)를 채집하여 수집된 자료가 1,000여 종류를 넘었기로 이제 하나의 책으로 묶어서 내어놓기에 이르렀다.』 - 1968년에 출간된 정영호가 쓴 한국동식물도감 제9권 ‘식물편(담수조류)’의 ‘머리말’에서 인용 -

   동식물 도감의 중요성을 깨닫다.


   이전부터 자연에 대한, 특히 동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 책방을 다닐 때마다 도감을 사서 모았지만, 도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해양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정확한 동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차츰 알게 되었다. 저서생물 연구실에서는 생태연구가 주 연구업무이지만 세 명의 학자가 각기 다른 무척추동물을 연구하는 연유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생태학자가 자료를 취합하기 위해 종 동정을 하였다. 이를 위해 분류 논문을 읽고 최신 분류 경향까지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시 국내에서는 이들 바다 저서생물을 분류할 전문가가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생태연구를 위해서 동물의 분류학적인 검토가 필요했다. 즉 한 해역의 생태학적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우선 어떤 종이 얼마나 사는지를 알아야만 해서였다.
   자, 연상해보자. 실험실은 기본적으로 두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방은 두 명의 저서생물 전문가와 비서 한 명과 보조 인력 한 명 그리고 필자의 자리가 있으니 한 방에 다섯 명이 썼다. 다른 한 방은 싱크대가 있고 그 방 창가 쪽은 한 전문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방에는 늘 포르말린 냄새가 배여 있었다. 앞 연재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장에서 가져온 포르말린 용액에 생물이 담겨있는 표본 병에서도 씻는 과정에서도 냄새는 퍼져 나와 공간의 이곳저곳에 배여 들어있었다. 처음엔 그 냄새도 향기롭게 느껴질 정도로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고, 저서생물 연구의 대가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그 덕에 콧속에 점막이 상당히 사라져서 냄새 장애가 있는 것을 그땐 몰랐었다. 그 시절 필자의 행색도 화제의 대상이었다. 때가 묻은 청바지에 물들인 군용점퍼를 입고 다이버 티를 잔뜩 내고 다닌 노안의 장발 학생이었으니.
   전문가들에겐 동물을 일차 선별한 다음에 보냈다. 표본에서 냄새가 거의 안 나도록 한 후 네모난 쟁반 같은 곳으로 담아와 다섯 분야로 나눈다. 전문가들의 세 분야 외에도 생물이 아주 많이 나오는 연체동물과 기타 분야까지다. 흔히 나오는 종들은 분류군으로 나누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작은 크기의 개체들을 보면 어떤 동물군인지 자체가 알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독자 여러분들은 처음 들어보는 동물이지만 새예동물(&#39955;曳動物, Priapulida)이란 무리가 있다. 서해산 표본에서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데 처음엔 환형동물의 갯지렁이류에 넣어 두었으나 자꾸 보게 되자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감을 며칠 동안 뒤져 전혀 다른 동물군임을 알아내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필자가 이 동물군을 찾아낸 최초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분명 벌레처럼 생겼는데 연체동물의 일부인 무판류(無板類, aplacophorans)도 그렇다. 이 무판류로 가지고 필자가 학회에서 발표까지 하였지만, 아직 논문으로 내진 못했다. 언젠가 내야 할 일이다. 물론 세 전문가의 지도가 있었고 처음 본 생물들을 전문가의 도움으로 새로운 이름을 찾은 것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 생물의 이름은 큰 분류군을 제외하면 다 학명을 먼저 알고 영어명으로 알게 되었다.
   문제는 모르는 생물이 나오면 처음부터 외국 도감이나 동정용 가이드북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저서생물은 바닥에 사는 생물들인데 바위게, 참갯지렁이, 별불가사리, 바지락 등을 말한다. 이들은 해저에서는 주로 모래나 펄 속에 사는 생물들로 바닥 퇴적물 위를 기어 다니거나 흙 속에 잠입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굴을 파서 관을 만들어서 산다. 더 큰 문제는 예를 든 동물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대부분이 아주 크기 작다는 데 있다. 생태연구에서는 보통 대형저서동물만을 대상으로 삼는데 생물을 걸러내는 체의 그물코가 1㎜ x 1㎜에 걸리는 생물들이다. 앞에서 예를 든 저서생물들은 거대 저서생물들인 셈이다. 그러므로 씻은 표본들 중에 체에 걸려든 생물 중에는 큰 모래 알갱이보다 작은 것들이 많다. 어떤 동물은 크기는 작고 퇴적물 색과 비슷해 찾아내기가 어려운 종도 적지 않았다. 처음엔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려 생물을 골라낸 다음 다 끝났다고 보고를 했더니 세 전문가 중 한 명이 “100마리는 더 나올 텐데 다시 해보지.” 하였다. 그래서 재차 보았더니 정말 많은 개체가 더 나왔다. 그래서 세상에 바다 바닥에 이렇게 많은 생물이 살고 있음과 잘 모르는 희한하게 생긴 이들 생물의 이름을 찾는 내는 것도 힘든 과제임을 차츰 알게 되었다.

한국동식물도감은 전 44권이지만 필자는 빌려준 것으로 포함하면 24권을 가지고 있다. 전권을 다 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된다.

   연구소에서 알바(엄밀히 말하면 필자가 나오고 싶어서 한 일이니 인건비를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주지도 않고 점심만 사주었으니 그냥 수습생이었음)에서 하는 동안에도 책방 여행을 다녔다. 집이 연구소와 가까웠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책방 하나가 있어 금방 그곳과도 단골이 되었다. 그러나 동네 책방에는 도감이 없었으니 도감을 구하는 일은 아무래도 종로서적과 영풍문고 그리고 청계천과 인사동의 헌책방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어쩌다 일본 책인 ‘호이쿠샤(保育社 보육사)’의 ‘해안동물(海岸動物)’이나 ‘호쿠류칸(北隆館 북융관)’의 ‘원색갑각류검색도감(原色甲殼類檢索圖鑑)’ 등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한두 권 나오는 것이니 보는 족족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다 샀다. 이 두 출판사는 일본 도감 출판의 양대 산맥이다. 필자의 책 장에는 두 출판사에서 발간한 도감들이 10권 이상을 있는데 다 이 시절에 검색(자료를 찾아서 이름을 맞추는 일)을 위해 산 것이었다.
   어느 날 청계천 단골 책방에 큼지막한 도감이 여러 권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도 한글로 된 도감이! 문교부(현재는 교육부) 지원으로 시작된 동식물도감으로 처음엔 동물도감으로 시작하였다. 1959년부터 2009년까지 44권이 나왔으니 매년 한 권 정도가 출간된 셈이다. 2009년 이후에는 나오지 않으니 그 시점에는 개인 학자나 사진가들이 작업한 사진의 질이 좋은 도감들이 시중에 많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지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동물들에 대해서 정부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책방에서는 도감만 나오면 잘 사두어서 필자의 수집물이 되었다(실제 해양생물 연구에 도움이 되는 도감은 적었음.). 구하기 힘들다는 제1권도 이 책방에서 구매했다. 도감을 사들이면서 헌책도 잘 모아 두면 투자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외국학자가 한국 도감을 구하려고 정가를 두세 배라도 주겠다 하여 소개를 해준 적도 있었다. 또, 국내 도서관 두 곳에도 한 질을 다 가지고 있는 인사동 헌책방과 연결을 해주기도 했다. 이들 책방의 주인은 늘 “다 모아야 돈이 되는데 구하기가 어렵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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