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경영학박사>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물질의 원소를 불, 흙, 공기, 물이라고 하며, 만물은 이 원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여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4가지 원소가 서로 결합하거나 분해되면서 물질이 형성되고 붕괴된다고 보았으며 결합하는 힘은 사랑이고 분해하는 힘은 미움 혹은 갈등이라고 했다. 즉 물질의 입자와 입자 사이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사랑이고 서로 밀어내는 힘이 갈등이다. 물질의 원자들은 근접할수록 서로 힘이 작용한다. 이러한 힘은 인력과 척력의 두가지 에너지이다. 이 힘의 크기는 원자간 거리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인력과 척력의 크기가 같아지면 총 원자간의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평형거리이다. 두 원자가 평형거리를 가질 때 원자의 결합이 가능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멀어지면 당기는 힘이 커지고 가까워지면 밀어내려고 한다. 평형거리가 될 때 가장 좋은 관계를 갖는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 1914~2004)은 프로세믹스(proxemics)라는 인간의 근접공학과 키니식스(kinesics)라는 인간의 동작학 분야를 개척했다. 이 이론은“인간의 역사는 주로 타인으로부터 공간을 탈취하고 외부인으로부터 그것을 방어하려는 노력의 기록이다”를 전제로 한다. 그는 미국의 중류층을 대상으로 개인 간의 거리에 대한 의식을 조사했다. 사람들이 만나서 어느 정도에서 평안함을 느낄까? 그는 4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아주 친한 사람과의 친근거리(intimate distance)는 15~45cm정도이며,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개인거리(personal distance)는 46~120cm정도, 공식적인 회의석상의 거리인 사회적거리(social distance)는 1.2~3.7m 정도이다. 강의나 연설을 들을 때의 공공적 거리(public distance)는 4미터 이상이라고 했다. 한편 네델란드의 심리학자 기어트 홉스트이트(Geert Hofstede)는 세계 53개국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상사와 부하들 간의 감정적 거리인 권력거리(power distance)를 측정했다. 인간관계의 가장 좋은 거리는 평형거리이다. 예로부터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라 할지라도 평형거리를 가질 때 바람직한 부부관계를 갖게 된다. 고속도로에서의 차간 거리는 100미터라고 한다. 너무가까우면 충돌하기 쉽고 너무 멀면 다른 차가 끼어들 수 있다. 부부간에 너무 가까워도 상대에 대한 존경과 배려, 호기심이 없어져서 충돌하게 되고 지루하게 된다. 너무 멀어지면 상대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고 친밀감 즉 당기는 힘이 약해지고 부부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게 된다. 우리는 종종 조직이나 집단을 배신하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경우 대부분 가장 가까웠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프리드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거리의 파토스(the pathos of distance)에서 고귀한 자와 비천한 자의 거리는 없앨 수 없고, 그러한 거리 두기에서 선과 악이라는 구분과 명칭이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서양에서 매너의 역사는 귀족들이 아랫것들과 달라야 하기에 일종의 구별짓기의 수단으로 거리의 파토스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한다. 파토스란 본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는 욕정, 노여움, 공포, 즐거움, 증오, 연민 등 쾌락 또는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을 의미한다. 수사학에서는 사람의 자연적 성향, 기질, 도덕적 성격을 에토스라고 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표출되는 감정을 파토스로 구별했다. 오늘 날에는 일시적으로 강렬하게 고양된 감정상태를 가리키는 동시에 강력하고 지속적인 욕망인 지배욕 또는 소유욕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건 야당이건 집안싸움이 한창이다. 거리의 파토스를 분출하는데 모든 힘을 소비한다. 좋게 보면 선한 경쟁이고 나쁘게 보면 이전투구(泥田典鬪狗)이다. 서로 물어 뜯으면 서로가 상처를 받는다. 누구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 없다. 성경은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했다. 패역한 자가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한다고 했다. 다툼은 선의의 경쟁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흠집을 내면 내게도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정도 하면 성품도 인격도 알만큼 알려졌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성경은 말한다. 상호간에 평형거리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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