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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안산신문
  • 승인 2021.09.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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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세계사>

60, 70년에 태어난 세대에게 작가 박완서는 너무나 익숙하다. 소설로 동화로 드라마로 그녀의 작품은 무수히도 많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처음 접한 20대에는 싱아가 뭔지도 몰랐고 제목이 낯설어서 그냥 지나쳐 버렸다. 40대에 들어서 부모님이 전원생활을 시작할 즈음 나는 다시 이 소설과 만났다. 바로 싱아 때문이었다. 엄마가 산책하는 도중에 ‘어 여기 싱아가 있네’라고 말하며 싱아를 잘라 맛보라고 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싱아가 뭔지 그 맛을 보았다. 시큼했다. 싱아, 이게 박완서 소설에 나오는 싱아구나! 그제야 제대로 소설을 읽었다.
 자전적 소설이라 그러지 작가가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1931년 개성 박적골에서 태어난 작가의 유년 시절은 자연과 함께였다. 소설가로서의 감성은 이때 다 채워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에 대한 그녀의 기억과 추억은 정말 생생하다. 유년기의 기억만으로 썼다고 하기엔 표현이나 감정이 세심하다.
   서울 아이들은 소나기가 하늘에서 오는 줄 알지만 우리는 저만치 앞 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나기구름이 저 멀리서 군대처럼 쳐들어오고, 정시용의 시 ‘향수’에서 나오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정겨운 시골 풍경, 그리고 새빨간 저녁노을을 보며 비애감에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순수한 감정…….
  저녁노을이 유난히 새빨갰다.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중략)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울음을 터뜨렸다(중략). 그것은 순수한 비애였다.
어린 시절을 자연과 함께 보내는 것은 정말 축복인 거 같다. 소낙비를 흠뻑 맞으며 환희의 춤을 추는 어린아이들의 순순함이 눈 앞에 펼쳐진 듯하다
 그리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 깊은 사랑을 그녀는 온 마음과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역사의식, 민족의식 없이 양반 가문으로 겨우 동네에서 대접받는다고 하지만 그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이 후일 작가가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찬란했던 유년 시절을 뒤로하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온 서울에서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시골에서는 그래도 양반 집안으로 동네에서 대접받았는데 서울, 그것도 달동네에서의 삶은 만만치가 않다. 작가는 외로웠고 친구며 할아버지며 모든 것이 그리웠다. 산을 넘어 학교에 다녀야 했던 그녀는 서울 아이들이 간식이라고 먹는 아카시아 꽃을 먹고 그 들척지근한 맛에 구토하며 새콤한 싱아를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저기 찾아봐도 없는 싱아, 시골에 아무렇게나 아무 데서나 피어있던 싱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제목이 향수임을 여기서 알았다. 그리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려고 찾은 싱아는 도시 어디에도 없다. 아무 데도 없는 싱아, 위로받지 못한 그리움을 어디서 달래야 하나? 도시에는 없는 싱아처럼 작가와 가족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도시에서의 삶은 막막하기만 하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당시에 신여성이라고 자부하던 어머니가 사실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이중성을 볼 때마다 경멸감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를 누구보다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시기를 잘 살아내야 하는 힘없는 백성일 뿐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내는지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와 6.25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소설이긴 하지만 한 개인의 삶이라고 해도 역사와 무관하게 흘러갈 수는 없다. 한때 좌익에 발을 담근 오빠로 인해 한국전쟁 당시 작가와 엄마는 빨갱이 가족이라고 끌려가 고초를 당한다. 이때 겪은 치욕스러운 모멸감은 훗날 이 이야기를 꼭 소설로 쓰리라고 마음먹는다. 찬란한 예감이라는 목차의 맨 마지막이 말해 주듯이….
 작가 박완서의 가족사가 그대로 다 드러난 이 책은 우리의 현대사가 한 가족의 삶과 어우러져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풀어냈다. 우리는 박완서의 고향 마을은 가볼 수는 없다. 전쟁 이후 북녘의 땅이 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작가 박완서를 기억할 때 꼭 이 책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전인숙<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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