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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19>석주명과 새 전문가를 만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9.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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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학자 석주명은 수많은 나비를 생김새와 크기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문헌들과 비교하여 ‘한국산 나비 종 수’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정리하였다. 그 연구결과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러나 人命(인명)은 豫測(예측)할 바가 못 되어 著者(저자)는 恒常(항상) 適當(적당)한 곳에서 段樂(단락)을 지어 小著(소저)를 거듭한 지 벌써 100餘次(여차)이고 1939년에는 그때까지의 自他(자타)의 業績(업적)을 基礎(기초)로 하여 ‘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를 지어 “韓國産蝶類(한국산접류)의 硏究(연구)‘의 前半(전반)으로 볼 수 있는 段階(단계)에까지는 지내왔다. 우리나라가 獨立(독립)된 오늘에 와서 이 硏究의 第3報(제3보)를 우리말로 發表(발표)케 된 것은 실로 愉快(유쾌)한 일이요, 또 意味(의미) 깊은 일이다.』 - 1972년에 출간된 석주명이 쓴 ’韓國産蝶類의 硏究‘에서 인용 -

   석주명과 새 전문가를 만나다.

   연구소의 알바 생활이 대학생활의 중심이 되기 시작하였다. 비록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면서 한국 최초의 수중 생물연구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꿈은 깨졌지만,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공부하는 다른 꿈이 이루어져 좋았다. 세 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문헌을 매일 듣고 바라볼 수 있어 행복했다. 꿈은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꾸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의 꿈은 해양생물학계를 전혀 몰랐던 철없는 군인 아저씨의 꿈이었다. 어쩌면 잘 몰랐기 때문에 꿈이 더 설레지 않았을까? 어쨌든 흥미진진한 나날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전혀 다른 일들이 일어났다. 3학년 땐 생물학과 학회장이 되고 전국생물학과체육대회를 치르면서 학교에서 주목받는(?) 학생이 되었던 것 같았다. 어느 날 복학한 동기생 한 명에 찾아와서 문리과대학 학생회장(당시에는 학도호국단 학생장)이 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의 제안이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끌리는 측면도 있었다. 그 친구는 ”네가 대학 시절에 언제 장학금 한 번 받을 수 있겠냐?“라며 약까지 오리고 갔다.
   당시에는 간선 선거였다. 한 학과에 다섯 명만이 선거권이 있었다. 각 학년 대표와 학회장. 단과대학 중에 문리과대학이 공과대학과 더불어 학과가 제일 많았다. 14개로 기억된다. 야간인 학과도 네 개나 도 있었다. 그리고 단과대학 학생회장이 되어야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운동권에서 드러나지 않은 총학생회장 후보로 필자를 지목하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공과대학을 대학에서 지원하는 후보가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어 운동권에서는 대적할 후보가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단과대학 학생회장 선거에 나서기로 했다. 선거 기간에 선거권을 가진 학생 대부분을 만났다. 결과 네 명의 후보 가운데 1차에서 과반수를 넘겨 당선되었다. 그러자 여러 학생이 찾아왔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것을 권유하였다. 이런 일을 정경대학과 상과대학 학생회장 당선자와도 논의하게 되었다. 가정대학에서는 문리과대학과 입장을 같이 했다. 나중에 정경대학 학생회장이 후보가 되었고, 선거에서는 공과대학 학생회장이 총학생회장이 되었다. 1981년의 일이다.
   과학회장이 되면서부터 학생들과 데모 현장에 나가는 일이 늘어났고, 데모에 나간 신입생들을 찾으러 가기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학생회 일로 보내다 보니 공부가 뒷전이 되었다. 당시 우리 식구가 살던 방 두 칸짜리 전셋집에는 늘 과 학생들과 친구들로 붐볐다. 모르긴 해도 라면과 김치 소비량이 엄청났을 것이었다. 휴학이나 방학 때는 학생회도 멈추었다. 그땐 유일한 안식처였던 해양연구소의 실험실로 다녔다. 전문가들을 따라 출장을 가는 일은 언제나 제일 신나는 일이었다. 차츰 전두환 정부와 당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도 저서생물의 종류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늘어갔다. 어느 날 장래에 관한 생각도 구체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공부 외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말렸고, 대학원 진학하는 일도 자신이 없었다. 중학교 이후 하지 않았던 공부가 잘될 리 없었다. 학과에서는 해양생물학과 동물분류학 등에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으나 입대 전 1학년 1학기에 한 과락이 발목을 잡았다. 선택과목으로 들었던 시문학 등 여러 국문학과 과목들이 성적이 나쁘지 않아 전체 성적을 받쳐주어 대학원 입학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초기에 수집한 해양에 관한 책들은 대개 화보 중심의 책이거나 도록이었다. 그중에는 국내에 흔하지 않은 책들도 있다.

    이때는 바다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터라 바다나 해양(영어로는 marine, ocean, coast 등)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구매 대상으로 삼았다. 집 책장에 적어도 오심 여권 화보나 사진집은 대개 이때부터 산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청계천 단골 헌책방에서 한 책을 발견하였다. ‘韓國産蝶類의 硏究(한국산접류의 연구), 石宙明 著(석주명 저)’였다. 접류란 나비류를 말하는 것이다. 제목이나 내용으로 보아 단행본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책이 버젓이 출판되어 있어 신기하였다. 바다 생물에 관한 것은 아니나 왠지 앞으로 하려는 공부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사두었다. 한참 후에 안 일이지만 석주명은 한국 생물학사에서 분류학 분야의 표상이 되는 유명 학자였다. 하지만 그땐 몰랐었다. 1972년 출판된 것으로 ‘寶晉齊(보진제)’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나 실제 저술은 1949년 전후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서론에 1939년 논문을 언급하면서 10년이 지났다고 하였고, 1950년 10월에 사망하였기에 그렇게 추론할 수밖에 없다. 1940년대 말까지의 한국산 나비에 관한 연구들을 총정리한 것으로 학술 가치가 높은 책이다. 비록 책으로만 그를 만났지만, 석주명을 알고 나서는 생물학자로서 가져야 할 성실한 태도와 엄격한 연구방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하고 있다. 지금 보니 책의 가격은 1,000원으로 매겨져 있다.
   같은 학과에는 한 학번 선배로 이미 우리 학과나 조류(鳥類)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조류 수집가가 있었다. 집과 학교에는 그가 만든 박제가 수두룩하였고, 조류에 대한 해박함으로 지식으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선배로부터 새와 조우한 이야기와 새를 잘 보관하고 박제를 완벽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해양생물 지식과 경험을 비교해보면 천양지차였다. 그동안 좀 잘난 체한 것이 부끄러웠고, 선배처럼 현장을 잘 알려면 더 열심히 다녀야 했다. 책에 나오지 않은 생물의 생태도 학자 스스로 관찰해서 알아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하였다. 훗날 이 선배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40대 후반 젊은 나이에 타계하였다. 이 두 학자의 일생은 꿈만 부푼 해양생물학자 지망생에게 커다란 교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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