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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하려면 먼저 힘들어야 한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9.1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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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꿈의교회 담임목사>

  옛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아이가 TV 프로그램을 보더니, 어머니에게 자기도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도구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듣기에 기가 막혔지만, 일단 캔버스와 유화물감, 붓 등을 사주었습니다. 신났던 아이가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데, 얼마 뒤 다시 울고 말았습니다. 왜 자기는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냐고 부르짖으면서 말입니다.
  이 아이가 봤던 TV 프로그램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이 짐작하신 대로, EBS에서 했던 <그림을 그립시다>였습니다. ‘밥 로스’라는 화가가 붓을 몇 번 터치한 뒤에, 허허허 웃고 나서 ‘어때요? 참 쉽죠?’라고 말했던 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이 당시 많은 사람이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워했습니다. 몇 번의 터치로 나무가 만들어지고, 몇 번의 붓놀림으로 노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비록 번역된 말이지만, 성우가 맛깔나게 ‘어때요? 참 쉽죠?’라고 외치는 말이 허풍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쉽게 그림을 그리는 밥 로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원래 군인이었습니다. 미 공군에서 무려 20년을 복무했던 부사관이었는데, 부업으로 그림을 그려서 팔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전역한 뒤에 교사로 일하면서 그림을 연습하기 시작합니다. 바쁜 와중에도 여러 수업을 듣고 연습하던 중, 한 스승에게서 자신에게 맞는 기법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한 줄기 빛이 된 그 기법으로 부단히 연습했고, 그것이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된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TV 프로그램을 맡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에 방송되면서, 말 그대로 대박이 납니다. 편안하고 쉽게 그림을 그리는 그를 보면서, 많은 시청자가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TV 화면으로 볼 때, 그저 편안해 보였던 그의 모습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습니다. 우선 조명의 반짝임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팔레트를 부드럽게 갈았습니다. 또 그는 초보 화가들처럼 적은 수의 물감과 평범한 도구들을 활용하면서, 초보 화가들이 그림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자는 TV 프로그램의 목적을 충분히 담아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 번의 촬영을 위해 2번의 그림을 그리는데, 한번은 자기 앞에 두어서 일종의 프롬프터로 썼고, 또 한번은 촬영 당시에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즉, 한 번의 촬영을 위해서 그는 수없이 연구하고 고민했고, 촬영 전까지도 미리 그려보면서 사전의 준비를 철저하게 했던 것이죠. 우리가 TV에서 볼 때, 밥 로스는 그냥 즉석에서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사전의 철저한 준비,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의 기법을 만드는 각고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쉽게 하려면, 먼저 힘든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쉽게 살려고 합니다. 농사를 짓지 않고 열매를 먹으려고 합니다. 연구하지 않고, 그저 단기간의 유행에 편승하려고 합니다. 남이 힘겹게 일구어놓은 밭에 무임 승차하려고 합니다. 이제 추석이 다가옵니다.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하고 정리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풍작이든 흉작이든, 알고 보면 우리 손에 결실은 있는데, 과연 우리는 그 결실 앞에서 떳떳한가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오늘도 힘들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오늘부터 힘들면 됩니다. 그러면 곧 머지않아, 우리를 쉽게 하는 아름다운 결실이 열릴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합니다. 복된 명절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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