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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20>학연 대학원생이 되어 무척추동물학에 입문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9.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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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만 종이 넘는 동물들이 기재되었다. 전체 종수의 5%만이 척추를 가지고 있는 척추동물들이다. 동물계를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로 나누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과 닮은 생물에 대해 우호적인 편견을 반영한 인위적인 구분이다. 동물계는 일반적으로 첫 번째 화석 기록이 나타나기 이전인 시생대 해양에서 출현한 것으로 믿고 있다. 여러 주요 동물군들은 적어도 일부가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자포동물과 극피동물 같은 큰 무리는 바다에서만 살아간다. 원시 해양환경에서 일부 동물군들이 담수로 침투하였고, 다른 동물들은 육지로 옮겨왔다.』 - 로버트 반즈의 ‘무척추동물학(제4판’)의 서론에서 인용해서 옮김-

   학연 대학원생이 되어 무척추동물학에 입문하다.

로버트 반즈의 ‘무척추동물학(제4판)’은 새 책으로 구입한 보급판으로 필자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책 가운데 하나이다. 책 내용이 정확히 이해가 안 되어도 밑줄을 그으면서 읽으면 기억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대학원으로 진학한다는 것은 중요 뉴스였다. 가족에게나 친구들에게도.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4학년 2학기에는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갑자기 할 일들이 사라졌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코앞으로 들이닥쳤다. 연구소에서는 해양생물을 재미있어 하는 그리고 바다를 열정적인 좋아하는 알바 학생에 불과했다. 가끔 대화 중에 대학원 이야기가 나왔으나 누구도 진학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다. 세 전문가는 모두 부산수산대학교(현재 부경대학교, 이하 수대)와 직접 연관이 있었다. 이런저런 정보를 통해 국내에서는 해양생물학자가 가장 많은 대학이고, 실험실 사정도 그러하니 수대로 진학을 고민하게 되었다. 먼저 교수님을 만나서 입학 허락을 받고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서 졸업 여행을 겸하여 수대 임해연구소로 실험실습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대학원생이 많은 조언을 해주고 한 교수를 소개해 주었다. 입학시험 3개월을 남겨놓고는 학교에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매일 영어공부만 하였다. 전공보다 영어가 걱정되었다. 이 시절처럼 열심히 공부한 적은 이전에 없었다.
   가까운 친척들은 가정이 어려운데 가족을 돕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한다는 비판 여론이 많았다. 친구들은 “니가 무슨 공부야!”하며 놀렸다.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이 더 심했다. 이들은 연구소 실험실을 나가고 해양생물에 몰입된 필자의 상태를 잘 몰랐지만, 공부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데에는 의견을 일치하였던 것 같았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말리진 않았다. 부모님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잘 되면 좋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지켜봐 주었다. 수대 입학시험 보름쯤을 앞두고 부산 수대를 방문하였더니 담당 교수님이 영국으로 연수를 가기로 결정났다고 하여 너무나 실망을 하였다. 서울로 돌아와 연구소에서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건국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고, 연구소에서 나와서 일과 공부를 함께하는 것이 어떠냐의 의견을 한 전문가가 권하였다. 시험을 십여 일 앞두고 다시 모교에 들어가 동물학연구실 교수님을 만나 어렵사리 수락을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시험은 합격하였다. 무척추동물학 학자가 되는 첫걸음을 겨우 내디딘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문제가 생겼다. 보통은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 목표를 정하여 논문 준비를 해야 하는데 종일 해양연구소에 있고 싶었고 논문 주제도 해양무척추동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 학교에는 적만 둔 셈이었다. 다행히 지도교수께서 양해를 해주고, 대학원장이 직접 학생 지도의뢰서까지 연구소로 보내주어 연구소 최초의 학연 대학원생이 되었다.
   대학원생이 되니 이전과는 달랐다. 따로 연구실에 자리도 생기고 연구 주제도 갯지렁이류의 분류로 정해졌다. 연구소 내 연구 지도는 갯지렁이 전문가가 해주었는데, 이는 갯지렁이류의 일이 제일 많아 형평을 고려하기도 한 것이기도 했다. 실험실 싱크대에서 하는 일도 조금 줄고 현미경을 보는 일과 전문서적을 읽는 일이 많아졌다. 또 생물을 보면서 특징을 찾아내고 어떤 종인지 찾아가는 전문 훈련을 하기 시작하였다. 종 동정 훈련이었다. 한편으로는 적절한 문헌을 찾아 비교해 가면서 했다. 하지만 참고문헌이 매우 부족하였다. 일본만 하더라도 한 분류군에 여러 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 필요한 문헌이 있는 전 세계 도서관과 희귀서적을 판매하는 헌책방을 알아내고 소장 목록을 파악하는 일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상하게 이 일이 재미있었다. 이런 문헌을 사기도 했지만 빌려 복사도 하고, 또 외국에서 공부하는 지인을 찾아 부탁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세 전문가가 꽤 많은 문헌을 가지고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때 숙지한 문헌을 찾아가는 요령은 이후 책을 수집하고 수배하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쓰였다.

무척추동물에 관한 책은 집과 사무실 책장 여기저기에 많이 꽂혀있지만, 일부 개론서는 한곳에 모아두었다.

 석사학위를 위한 큰 주제는 정해졌어도 여전히 연구실 내에서는 현장에서 올라온 표본을 대별하는 일은 필자의 책임이었다. 분류군의 이름에서부터 각 동물군 형태의 명칭도 알아야 하니 숙지해 두어야 할 단어의 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더군다나 일차적으로는 영문 원서를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용어가 걸림돌이 이었다. 때론 우리말 이름도 필요했다. 또한, 경우에 따라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일본, 중국, 러시아의 서적도 보아야 하니 읽어야 할 것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필자에게 성경과도 같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로버트 디 반즈(Robert D. Barnes)의 무척추동물학(Invertebrate Zoology)’이었다. 1089쪽의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적혀 있어 전공자가 아니면 보기만 해도 질렸을 것이다. 처음엔 못 보던 생물이 나오면 이 책에서 찾아 그 동물군의 특성을 그대로 노트에 옮겨적는 일부터 시작했다. 필자만의 공부방식이었다. 바로 해독이 되지 않으니 원어 그대로 외우거나 익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자주 적다 보니 용어의 의미가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무척추동물은 그 종류가 워낙 방대하고 육상에는 곤충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 밖의 종류는 의외로 많지 않은 방면에 해양에는 곤충류만큼 큰 동물 무리는 없어도 문(phylum)과 강(class) 단위의 동물군이 훨씬 많다. 문 단위로 보면 육상에 있으나 해양에 없는 분류군 없으나 반대로 바다에는 살지만, 육지에서는 살지 않은 생물 무리는 많다. 큰 동물군을 보면 해면동물(담수에는 있음), 자포동물(기수에 극히 일부 종이 서식함), 극피동물 등이 있고, 종 수가 적은 해양에만 있는 동물문은 10여 개나 된다. 이렇게 열거하는 이유는 무척추동물 전체를 공부하려면 해양생물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바다를 모르면 무척추동물의 세계를 진정 이해하기가 불가능할 그뿐만 아니라 어떤 생물의 존재는 아예 모를 수 있다. 한국해양연구소 저서생물연구실에서는 전국 바다에서 채집된 표본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생물들의 관찰을 충분히 할 기회를 얻었다. 실험실에서 생물들을 골라내어 구분하면서 지리적, 서식지별 생물 조성의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는 생물학적 감각도 키워주었다. 더욱이 세 전문가와 가까이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초보자인 필자에겐 크나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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