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연휴가 되면 나들목엔 승용차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이젠 지쳐가는 느낌이다. 정부는 대책이 없다. 확진자 수가 널뛰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연장 외엔 말하는 게 없다. 방역 시작 단계부터 헛발을 디뎠으니 잘 될 리가 없다.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자영업자들의 자살 소식이 심상치 않게 다가오고 있다. 백신 접종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발벗고 나서는 정치인이 없다. 저들만의 리그인 대선판에만 몰입하고 있다.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은 날로 증폭하고 있는데 서로 상대방 탓이라고 손가락질만 해대고 있어 국민만 당혹스럽다. 학교와 직장에만 왕따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나라에도 왕따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래저래 짜증을 참고 사는 국민이 왕따임을….
그래도 계절은 가을이다. 설악산으로부터 시작된 단풍이 남진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들은 10월 중하순까지가 단풍 절정기이다. 내장산과 무등산 정도가 11월 초순이 절정기라고 기상청은 예보하고 있다. 눈 들어 보이는 곳마다 가을이 들어차고 있다. 숲길에 들어서면 일찌감치 떨어진 낙엽이 사그락거린다. 푸르름이 뚝뚝 떨어지는 하늘과 구름을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정마저 느낀다. 풀벌레 소리가 가슴에도 들어차고, 어쩌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가을 노래만 들어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여기저기 풀숲에 떨어져 죽은 매미는 삶에 대한 많은 사유를 하게 해 준다.
뭐니뭐니해도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다. 청춘남녀들의 결혼 계절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많은 축하객들과 함께 결혼식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2년째 코로나19는 결혼식마저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예로부터 신분을 초월한 결혼식은 세인의 관심이 되었다. 그래서 소설과 웹툰에서는 신데렐라류의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일본 왕실의 마코 공주가 평민 출신 변호사와 결혼을 26일 앞두고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전통적으로 공주에게 주는 1억 3천만 엔까지 사양하고 있어 더 큰 관심을 쏟게 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90%가 넘게 이 결혼에 반대하고 있다는 여론 결과가 나왔다.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두 사람만의 사랑에 관해서 본다면, 그 누가 반대해도 상관은 없다. 오히려 사랑의 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신분을 초월한 결혼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 있었다. 2011년,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가 평민인 케이트 미들턴과 결혼했다. 왕위 계승자가 평민과 결혼하기는 1660년 제임스 2세 이후 350년 만의 일이었다. 고 다이애너비를 꼭 빼닮아 영국인들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윌리엄 왕자의 결혼에 영국은 물론 세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같은 해, 히말라야산맥의 작은 나라 부탄에서 국왕이 평범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31살의 국왕은 11살 어린 평민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결혼식은 국왕의 뜻대로 외빈도 없이 소박하게 치러졌다. 동화 속의 이야기 같은 결혼 풍경이다.
왕실이 있는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의 나라들은 평민과의 결혼에 제약이 없다. 왕족과 결혼하는 평민에게는 왕족의 권위와 칭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반대인 나라도 있다. 바로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평민과 결혼해도 남성은 왕족 신분을 유지하지만, 여성은 평민이 된다. 마코 공주가 그 예에 속한다.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가 왕세자 시절인 1968년, 왕실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터졌다. 왕세자가 평민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폭탄선언으로 마침내 왕세자는 평민 여성과의 결혼을 허락받았다. 이 결혼으로 권위와 격식으로 가득 찬 왕실이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다. 사랑은 진실한 마음과 용기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마코 공주도 자기의 모든 지위를 버리고 평범한 남성을 택했다. 사랑의 힘이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여자가 아니라면 저는 평생 독신으로 살겠습니다.”
노르웨이 왕세자 말이 가을 단풍보다 더 아름답게 우리 마음을 채색하고 있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