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석<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직무대행>

커다란 난관이 있다. 나이 때문이다. 유불선 전통에 기초한 새로운 국학과 서구의 세계적 석학들의 서적들을 공부하자니 나이가 걸림돌이다.
이제와서 무슨 공부냐는 심사가 자꾸 얼굴을 내민다. 사실 나이는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어 무성하게 살라고 부여한 숫자일 뿐이다. 그런데 자꾸 공부를 피하려고 나이 핑계를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
10 여년동안 불교서적과 동양고전을 중심으로 공부했다. 졸고도 출판했다. 앞으로도 첫 출간한 책을 시발로 두세권의 책을 더 집필할 생각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별무소용인 노고를 하려는 거냐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든다.
공부를 하다보니 전문적인 탐구와 많은 공부 양이 요구된다. 공부와 연관된 기성지식의 습득만도 벅찬 상황이다. 관련 학문인 한문과 중국과 한국의 광대한 역사철학 등 전문분야를 더 세밀히 공부해야 하는 것도 큰 일이다.
일본 지식인들의 완성도 높은 동양사상 연구들도 익힐 필요가 있는데 벅찬 일이다. 세계적 석학들이 사회와 환경을 말하는 책등도 살펴야 한다.
이렇듯 공부와 관련하여 넓고 깊게 파야 하는 전문적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냐는 의식이 나를 유혹한다. 학자도 아니고ㅠ. 새벽에 일어나 책상머리에 앉으면 고심이 시작된다.
내 공부는 한마디로 말하면 그동안 살면서 정신적으로 대외의존하였으니 앞으로는 자존하겠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나의 몸은 그동안 내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성형된 구조물일 뿐 내부로부터 주도된 형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가 아니고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다는 각성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오늘 나의 생각의 뿌리를 찾고자하는 이들에게 지식 고고학적 메스의 날카로움으로 뿌리를 파헤치는 방법과 방향을 제시한다. 동과 서, 옛과 오늘을 자유롭게 소요하는 대붕의 날개를 타고 독자들은 저자의 세계에 몸소 참여하여 웃고 또 울 수 있을것이다. 동양학은 이미 ‘공자왈’이 아니다. 나의 살아 움직이는 실존적 삶의 영원한 현재의 기록일 뿐이다.”(동양학 어떻게 할것인가. 김용옥. 통나무)
10여 년 간의 공부는 그런 의식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그래서 뭐가 달라졌나라는 물음에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때는 아주 공부를 더해서 무엇하냐는 자괴감 비슷한 것들이 가끔씩 내 의지를 방해하곤 한다. 일종의 유혹인데 그 맛은 달콤하고 끈질기다.
앞으로 해야 할 공부의 양과 깊이는 거의 무한대이다. 어쩔거나? 하다 말면 아니함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에 의지해서 열나게 공부해야 하지만 해이해 진다. 어째서 공자님은 평생 공부하라고 가르치셨는가?? 너무 힘든일인 줄 다 아셨을텐데!
노자 어르신은 왜 무위를 하라고, 아무것도 하지말라는 더 깊은 경지의 공부를 하라는 것인가?
부처님은 니르바나에 이르는 끊없는 마음공부를 설하고 있는데 근처에 가기도 힘들다. 서구 철학들은 보면 볼수록 난해한 관념과 생소한 언어들의 잔치판이라 순순히 감득되지가 않는 이유를 찾는 것도 커다란 숙제들이다.
이 모든 걸 떠나서 우둔하고 게으른 천성과 악착같지 않은 성품때문에 공부의 진전은 더디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도올 선생의 돈후 박학한 지식의 가르침에 힘입어 조금씩 공부의 맥을 집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현실속에 나타난 삶의 지향은 너무도 넓고 방대하다. 전문적 학자외에는 접하고 배운바가 없는 내용들이 많은데 새롭고 신선하며 충격적이다.
그러나 서구사상의 유입에 따라 타의적으로 전승이 끊어지는 비극적 상황은 국학의 발전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의 맥을 끊었다.
그런 상황은 구한말과 식민지를 거쳐 사상면에서 예속적이고 의존적 실상을 초래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가 사회 운영은 총체적 왜곡속에 심각한 불평등이 일상으로 벌어져 왔다.
주요하게는 동학혁명, 일제와의 투쟁, 제주4.3, 여순항쟁, 미군정, 6.25, 친미친일세력 집권, 4.19, 군사쿠테타, 5.18광주항쟁, 민주화투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근세와 현재의 상황은 전통과 서구의 혼융이었고 민족혼과 서구문명의 뒤엉킴이었다.
정신과 물질문영의 유입과 방어, 이용과 거부, 물리적 혼합과 화학적 결합, 기계적 습득과 창조적 적용의 시대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첫번째 나의 공부 과제는 자주적 나의 발견이요 발현이다. 둘째도 자주적 나를 알아감이다. 세째도 네째도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한다.
이제 공부해서 머할꺼냐는 유혹에 넘어지고 자빠지고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알아가는 즐거움은 터득하는 것 같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속은 해야할텐데 괜한 의심이 들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젊어서 공부했다면 학자가 되었을 테지만 장년에 들어 배우는 공부는 온전한 인간을 만드는 것 같다.
자기만족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자기존중과 겸허의 깨달음을 얻어갈 것 같다.
나중에 이만하면 세상에 나온 까닭은 알고 가는거라는 자주적 자유인의 경지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걸로 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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