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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 안산신문
  • 승인 2021.10.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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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책이 있는 풍경

가을이다.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 같은 식상한 표현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책장을 넘기기 좋은 계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이 책의 많은 부분을 도서관 야외벤치에 앉아 읽었다. 내 글을 보고 혹여 이 책을 찾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낙엽 물드는 등나무 밑 벤치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을이 보이는 창가 정도는 앉아 주라고 권하고 싶다. 그가 누구든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강화 시인으로 알려진 함민복 시인은 가난과 어머니에 대한 시를 많이 쓰기로 유명하다. 또한 강화도에서 생활하는 일상을 수채화처럼 잔잔하고 따뜻한 언어로 가슴 아리게 그려낸다. 여러 편의 짤막한 산문들로 이루어진 이 책의 이야기 또한 가난과 어머니, 그리고 강화도에서의 삶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각각이면서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는 한 편의 장편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운문과 산문의 차이가 무엇일까. 문학 전공자나 전문 작가 또는 시인들 각각이 내리는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언어의 함축성이 어느 정도인가, 거기에 더해 리듬감과 여운 등 시적 장치를 갖췄느냐 정도가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구분법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책이 비록 ‘산문집’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시와 수필의 중간 어디쯤’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간혹 운문을 쓰려고 했는데 산문이 되고 산문을 쓰려고 했는데 운문이 되는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부분 운문도 산문도 아닌(또는 운문이기도 하고 산문이기도 한) 그 중간 어디쯤의 글이 되곤 한다. 다음 글을 보자.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p12 ‘선천성 그리움’ 부분)
  첫 장 첫 페이지에서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가슴이 뛰었다. 이미 시의 세계로, 이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부터 이어지는 산문들, 아니 운문 같은 산문들, 산문 같은 운문들. 시나 수필이라는 특정된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 크거나 작아서, 또는 생김새와 향기가 달라서 새로운 그릇이 필요했으리라는 걸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시집’도 아니고 ‘수필집’도 아니고 ‘산문집’이었구나.
  자체로 한 편의 짧은 이야기이면서, 책 제목이기도 한 <눈물은 왜 짠가> 역시 단순히 산문이라기보다는 ‘산문시’라는 정의가 맞을 듯하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리던 여름날,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 ‘고깃국’이라는 게 겨우 설렁탕을 먹는 거였다. 그리고는 소금을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한 후, 식당 주인의 눈을 피해 아들의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는 어머니… 모른 척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며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식당 주인… 급기야 참고 있던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고,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는 아들의 이야기다.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책을 사서 읽기도 하지만 가까운 도서관을 통해 빌려 읽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빌려 읽다 보면 종종 소장해서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책이 있다. 그럴 땐 꼭 다시 구매를 하는데, 이 책도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 내 방 책꽂이에 꽂혀 있다. 내가 앞에서 이 책을 ‘시와 수필의 중간 어디쯤’이라고 했던가. 그걸 바로잡아야겠다. ‘시와 수필 그 모두를 품고 있는 무엇’이라고.

박청환 시인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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