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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24>생물들의 이름에 빠져들었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11.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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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책 논문은 필자가 연구실에서 하던 일을 정리한 것인데 연체동물이 우리나라 해양무척추동물 중에서 종 수나 이용 정도에서 비중이 가장 큰 동물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 시 ‘꽃’의 전문 -

생물들의 이름에 빠져들었다.

   생물들에게 다 이름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학명이 있다. 이 경우도 어떤 과학자에게 발견되어 신종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나 가능하다. 즉 존재는 하지만 존재를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말 이름이 그렇다. 수많은 정보가 왕성하게 소통되는 현대에서는 더 우리말 이름이 필요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외국 생물을 소개할 때 우리말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도 궁금했었다.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외국어 이름을 직역해서 쓰기도 했다. 예를 들어보자. ‘저어새’가 있다. 영명은 ‘스푼빌(spoonbill)’이다. 숟가락 모양의 부리(bill)가 있어 ‘스푼빌’이 형태와 딱 맞는 이름 같아 우리말이 없었다면 ‘숟가락새’ 또는 ‘숟가락부리새’로 번역하는 격이다. 마침 순우리말 이름인 ‘저어새’라는 이름이 있었다. 부리로 물을 저어가며 먹이를 찾아 먹는 새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서양에서는 형태로, 우리는 생태로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저어재와 닮은 ‘노랑부리저어새’가 있다. 이 종의 영명은 ‘유라시안 스푼빌(Eurasian spoonbill)’이나 부리에 노란색 부분이 있으니 유라시아 저어새라고 하지 않고, 우리나라 명명자는 ‘노랑부리저어새’라고 이름의 붙인 것 같다. 저어새의 사례를 보면 이름이 만들어진 연유가 형태나 색일 수도 있고, 사는 지역이거나 생태적 특성일 수도 있는 등 원칙이 없다. 이 경우는 그래도 우리말 이름이 꽤 합리적이고, 이해가 잘 되는 경우다. 그러나 작은 크기의 많은 해양생물이 이름이 없거나 학자나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다 보니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의 어려움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연구소에서 일하던 어느 날에는 윗분들이 생물 이름에 우리말을 찾아 붙이라는 지시를 하였다. 보고서를 마무리하기 전에 초고가 완성되면 주요 단어들(특히 명사들)을 한자로 고쳐 쓰고, 주로 학명으로 쓰던 생물의 이름을 우리말 바꾸는 과업이 필자에게 떨어진 것이었다. 물고기 이름은 마침 정문기 선생이 지은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 1977년 초판 출판)’를 참고하였는데 연구소 도서관에 있었고, 연체동물에 인용한 유종생 선생의 ‘원색 한국패류도감(原色 韓國貝類圖鑑 1976년 초판 출판)’은 필자가 가지고 있어서 해결되었다. 하지만 기타 해양생물의 경우 갑각류에는 김훈수 교수의 도감(한국동식물도감 1973년의 제14권 집게류와 게류 그리고 1977년의 제19권 새우류)과 노분조 교수의 도감(한국동식물도감 1977년의 제20권 해면&#61600;히드라&#61600;해초류)이 있었으나 이들 도감은 연구실 주변에 없었다. 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언급된 도감은 아주 큰 일반적으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종이라면 연구실에서 처리해야 할 종들은 그런 도감에 나오지 않는 아주 작은 종들이고 특히 한국 바다에서 기록되지 않은 종들이라서 어떤 개체는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큰 개체들은 한눈에 소속을 알아맞힐 수 있으나 작은 개체들은 어떤 동물군인지도 짐작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종일 답답함이 가득하였다. 어떤 때는 꿈에서 생물 이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더군다나 분류군 이름을 모를 때는 일단 일본 도감(도감이 우리나라보다 종류도 훨씬 많았고, 정리도 잘 되어 있었음)을 찾아 학명을 추적하고 다시 우리말 이름을 찾았다. 우리말 이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과(科 family) 이름이나 더 큰 분류군인 목(目 order) 이름을 찾아 “&#8211; 류”라 하였다. 예를 들면 비늘갯지렁이과에 속한 어떤 종인데 도저히 학명을 찾을 수 없었을 경우 참비늘갯지렁이 속(屬 genus)이라는 것 알면 ‘참비늘갯지렁이류’라고 하고, 속(genus)도 모르면 그냥 ‘비늘갯지렁이류’라 했다. 이렇게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은 누구도 중요한 연구로 보지는 않았으나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단순하고 반복된 작업인데도 지겹지가 않았다. 이 일을 하다 보니 연구소의 다른 연구실의 연구원들로부터 요청이 늘어났다.

1990년 초에 이 책을 구하곤 북한 책이라 불안하게 가지고 들어와서 통일부에 연락하였더니 학술 책은 괜찮다고 해서 지금은 편안하게 소장하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요령이 익혀져 이름을 찾아내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면서도 우리말 이름을 추적하는데 무엇인가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문헌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 부족하지만, 국내 있는 문헌이라도 찾아보자며 수집을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석주명의 ‘朝鮮 나비이름의 由來記(1947년)’, 양한춘의 ‘貝類方言調査(1957년)’, 강제원의 ‘韓國産 海藻類의 國名(1962년)’, 한국동물학회의 ‘韓國動物名集 III 無脊椎動物(1971)’, 김훈수와 노분조의 ‘學習原色大圖鑑(1977)’, 김충균과 이원옥의 ‘水産資源名集(1979년)’, 이정재와 백문하가 1980년대 초에 연재로 낸 글 ‘濟州沿岸에 分布하는 海洋生物의 地方名에 관하여’, 김훈수의 ‘生物名과 生物敎育(1984)’, 현대해양이 만든 ‘水産動植物名辭典(1988년)’ 등이었다. 물론 이 문헌들 외에도 많은 문헌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나왔던 ‘鮮滿動物圖鑑(선만동물도감)’이 있는데 이 책의 일부분만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 종의 기술에는 우리말 이름을 비롯하여 만주어 이름, 일본어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원본을 지금도 추적하고 있다.
   정문기 선생은 우리나라 어류 연구의 선구자인데 우리말 이름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는지 1934년에 ‘朝鮮魚名譜(조선어명보)’를 집필하면서 159종의 어류에 대한 국명(조선명)과 방언을 기재하였다. 해양생물의 우리말 이름 목록이 있는 자료를 수집하던 시기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러시아 과학자로부터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에서 나온 ‘우리 나라 서해안의 연체동물(1985년)’을 구했고. 한 국내 어류학자로부터 과학백과사전출판사의 ‘조선동해어류지(1980년)’ 복사본을 얻었다. 이 두 권의 북한 서적은 지금까지 소중하게 소장하고 있다. 1989년에는 필자가 한국패류학지 제6호 별권 1호로 91쪽에 달하는 ‘한국산 연체동물 우리말 이름’이라는 논문을 냈다. 781종의 우리말 이름과 방언 그리고 우리말 이름이 만들어진 경위와 참고문헌들을 적었다. 1971년에 나왔던 ‘韓國動物名集’의 증보판이라고 할 만한 ‘한국동물명집(곤충 제외)’이 훗날이라고 할 수 있는 1997년에 한국동물분류학회가 펴냈고, 필자는 연체동물 분야 집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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